프리-프리퀄, 강희정이라는 이야기 책
글 조주리
작가로부터 건네 받은 자료 중에 나는 오래 전 그가 제작한 출판물 ‘욕조 프리퀄’(2016)을 의지 삼아 작업의 역사와 함께 작가가 겪어왔을 삶의 변화들을 짐작하며 지금까지의 시간을 더듬거려본다. 그 안에는 놀랍도록 풍부한 개인인 서사와 작업의 단서들이 담겨 있는데, 때문에 이 책은 일종의 제작일지라 할 수 있는 작업 노트의 모음인 동시에 개인의 성장소설처럼 느껴진다.
근래의 작업에 대한 감상과 해설에 앞서, 나는 7년 전 그가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 선보였던 ‘욕조’ 작업을 주의 깊게 복기해 본다. <욕조 프리퀄>은 그가 독일 유학 시절 선보였던 동명의 작업을 몇 년 후 한국에서 재 제작한 작업이다. 방식은 다르지 않다. 작가는 고향인 제주에서 오랜 시간 사용했던 책상을 물리적으로 반대 구조라 할 수 있는 욕조로 변모시키는 과정에서 겪어냈던 일상의 분투와 작업을 바라보는 태도를 지면을 통해 소상하게 기록하였다. 독일 시절, 텅 빈 공간에 덩그마니 놓여 있던 직각의 타일 욕조는 어딘지 쓸쓸한 표정과 자태를 하고 있어서 그것이 작가의 미술 작업이 아니라면 대개는 이해 받지 못할 무용함의 표상으로 보였다. 필요 이상의 고생스러운 과정이 배어있는 작업이 지닌 생명력이란 매끈하게 조탁된 형상이기 보다 개념의 착상과 물리적 실천의 과정에서 생성되는 온갖 실패담 덩어리일 지 모르겠다. 글을 배우고, 그 위로 부단히 무엇인가를 써왔을 ㄷ자 구조의 책상을 뒤집으면, 우리가 알던 책상이라는 사물은 물자를 담고 어디론가 보내지고 있는 커다란 운송 상자, 혹은 겨우 홀로 누울 만한 작은 방공호 공간처럼 변모한다. 전자가 고향에서의 삶과 배움에 대한 공간적 은유라면 후자는 낯선 곳으로의 이동과 새로운 정주 형태가 가시화된 시기, 쌓아온 지식을 어디로든 내보내는 유목적 상태를 지시하는 것은 아닐까, 그저 보이는 대로만 유추해 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욕조 작업 이후에 선보였던 ‘책 상자’ 작업이 외형적으로는 조형적 실험, 평면과 입체 사이의 변주라는 형태론적 테제 안에서 독해되기 적합하지만, 실은 작업이 만들어지고 외부에서 호출되는 다양한 시제, 작업이 (다른 무엇과 닮아 있지만 결코 그것은 아닌) 작업으로 인지되는 맥락, 과정 또한 작업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세간의 믿음에 대한 회의와 자기 반증, 추상적 매체로는 드러낼 수 없는 자전적 상황을 투영하고자 하는 욕망이 두루 담긴 까탈스러운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본편에 선재했던 원전의 이야기를 다루는 ‘프리퀄’이라는 영화적 어휘는 그 기준을 어디야 두느냐에 따라 온전하게 성립될 수 있다. 가령, 독일의 작업이 서울에서의 재 작업에 대한 프리퀄일 수도 있고, 두 번 째 작업이 이후의 작업에 대한 또 다른 프리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시간의 차이를 두고 의미없이 반복, 재생 된다면 시퀄도 프리퀄도 아닌 개별적 실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굳게 닫힌 블랙 박스를 열어보고자 하는 열망 없이는, 제작된 적도 없는 프리퀄의 장면들을 상상해 보지 않고서는 후속편이 기획될 수 없는 것처럼.
근작인 <책 상자- 펜테질레아>(2021)는 기존의 책 상자라는 물리적 구조와 기초가 되는 재료를 유지하는 것 말고는 어떤 점에서 지금까지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태도와 스타일로부터 급격하게 선회하는 시도처럼 보인다. 상자의 표면에는 만들었다 떼었다를 반복한 것 같은, 약간은 깔끔하지 못한 제작의 흔적이 선명하다. 그 위로 고대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들이 ‘타일’ 부조 방식으로 부착되어 있다. 해설을 읽지 않는다면, 그것이 언젠가 한번 쯤은 읽어 본 듯한 그리스 신화 속의 여전사 펜테질레아와 적군의 수장 아킬레우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사르페돈과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눈치채기 어렵다. 작가가 제공한 설명에 따르면 <책 상자-펜테질레아>는 고대 그리스 신화를 각색한 독일 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희곡 <펜테질레아>(1808)와 클라이스트의 독특한 죽음을 다룬 예시카 하우스너의 영화 <아무르 포>(2014)에 묘사된 사랑의 감정을 모티브로 삼는다. 이러한 도상적 변경은 이미지 재현 방식에 대한 조형적 실험이기보다 낭만적이지만 잔혹한 애정 서사를 내장한 고대극의 감정선이 작업으로 옮겨오는 것이 작가 자신에게, 기존의 작업역사에서 어떤 의미일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제기일지 모른다. 통속성에 관한 어쩔 수 없는 이끌림, 구체적 에피소드와 인물 캐릭터의 묘사는 추상화된 미술에서 배격되기 쉬운 요소이다.
전시 리플렛과 같은 얄따란 출판물을 부착하였던 책 상자는 올해 들어 조금 더 부산스러워졌고, 타일로 장식된 박스는 서사를 은폐하기 보다는 관람객을 향해 한껏 돌출되어 있다. 과거의 욕조 작업에서 한 칸 한 칸 단정하게 시공되어 있던 타일들은 과감한 장식성과 분명한 안면성으로 인해 고대 그리스 도자기 속 인물처럼 각각의 이야기를 발산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작업들을 <책 상자> 작업의 한 지류로 보아야 할 지 점차 모호해 진다. 이야기와 인물에 관한 강렬한 붙들림이 새로운 내용의 후속편이 아니라, 실은 오래 전에 하고자 했던 작업보다 더 이전에 존재했던 최초의 프리퀄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내부를 보여주지 않는 상자가 갖는 비밀스러운 구조의 쓰임은 지금에 와서 표출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감정선을 바깥으로 끄집어 내기 위한 사방(四方) 타블로가 되어 버렸다.
프리퀄의 프리퀄을 좇다보면, 어느새 이야기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때가 있는데, 작가에게는 어쩌면 지금이 그 때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리즈의 첫 출발인 것일까. 가벼운 산책이 여행이 되고, 고생스러운 여행이 귀향오디세이가 되려면 좀 더 긴 여정이 필요할 일이다.
강희정은 근래에 만난 작가 중에 가장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작가인데, 그것이 나는 그리 나쁘지 않다. 책의 표지가 있다면 목차를 살펴야 하고, 그 속에 담긴 문장 하나, 단어와 조사의 함의마저도 읽어내려 온 애를 쓴 후에야 비로소 이해의 대상이 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한 것뿐이다. 충분한 시간을 쏟아 붓지 못한 것일 뿐이다. 작가를 한 권의 책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면 말이다.
강희정 작가의 홈페이지 정보
http://sumsaram.blogspot.com/
*2021 금호미술관 의뢰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