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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r united Sep 18. 2022

김동기:얕기의깊이, 빠르기의느리기, 좁기의넓기   

- 김동기의 목판화로부터

얕기의 깊이, 빠르기의 느리기, 좁기의 넓기    

- 김동기의 목판화로부터



글 조주리

 

판화를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구체적 경험이 몸에 새겨진다. 판화가가 실천해 나가는 온 과정은 힘과 속도, 방향을 조정하는 일이다. 몸통에서 어깨로, 다시 손목을 지렛대 삼아 손마디와 손톱 끝으로 전이되는 힘을 조절해야 한다. 그렇게 단단한 표면을 떠내고, 미끄러지듯 내부로 파들어가는 특수한 감각은 몸 속 깊은, 어딘가에 남는다. 이것이 내가 판화 과정에 대하여 간직하고 있는 얄팍한 기억이자 묵직한 그리움의 정서다.

 

판화를 주요한 매체 삼아 활동해 온 작가 김동기를 만나기 전부터 나는 줄곧 화면에 드러난 이미지의 해석이나 주제적 함의를 밝혀내는 일 보다는 판화 표면에 응축된 힘의 상태와 원판의 무른 정도, 도구가 가진 예리함, 중추 신경과 미세 근육 사이의 신경학적 협응 같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미안하게도, 작업에 대해 궁금한 것들은 그런 것들이었다.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도통 알 수 없는 그런 영역의 예술 노동이 갖는 특수성은 언제나 구체적이고 촉각적인 심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김동기가 과거에 발표해 왔던 일련의 작업들은 회화와 조각 사이를 오가는 다양한 형식적 특질과 설치 감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작의 능숙함과 설치의 유연함이 있다. 더러 작업 세계의 변곡점들이 있었겠지만, 일관된 톤과 매너가 있다. 이를테면, 벽면에 고정된 판화의 안면은 끊임없이 세계의 겉면을, 풍경의 층리를 할퀴고 떠내어 드러난 살갗과 몸체를 예각으로 밀어낸다. 짙게 배어든  색과  다운된  가지 색조로 표현된 화면이 묘사하는 세계의 정경은 어둡고 눅눅하다. 지나치게 웃자란 나무, 빽빽한 밀도의 , 걍팍한 건축적 골조는 주변부로 밀려난 원시 자연과 방치된 도시 문명을 드러내고 있다. 투명함과 경쾌함이 결여된 화면들은 판화의 전형성에서 비껴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장르 안으로 불쑥 들어가지도 않는다.


사람과 생명체가 등장하지 않는 그의 작업 전반에 낮게 깔린 우울과 불안의 정서는 역설적이게도 그의 작업을 주목하게 만드는 문학적 통로이자, 듬성듬성한 서사를 보완하여 바라보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핵심적 에너지는 그의 몸에서 뻗어나온, 놀라우리만큼 섬세하면서도 거침없이 빠르게 이어지는 선들이 이루는 면적과 양감.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억센 운동감과 이미지의 농도다.

 

작가로서 알려지기 시작한 즈음부터 일련의 작업들을 살펴보면, 찍어낸 것이라고 하기엔 올올이 결이 서있고, 그려낸 환영이라고 하기엔 화면 내부로 뻗어있는, 얕고 깊은 흔적들이 자명하다. 손끝으로 자분자분하게 일으켜 세운 듯한 이미지의 공예적 미감, 날 선 사금파리 조각으로 무른 화면을 스치고 지나간 듯한 속도감, 사방으로 방사되는 조각도의 액션으로부터 페인터의 “자동기술”적 (automatism) 습관 같은 것들을 떠올려 보게도 한다. 정확한 사진 기억을 지닌 작가로부터 인출된 풍경에는 언제나 알맞은 긴장감과 운동감이 묻어난다. 빠르고 무념하지만 놓친 것 하나 없는 그런 풍경.

 

한편, 동시대 판화에는 다양한 기법적 혁신과 디지털 변이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그의 작업들을 마주함에 있어 ‘새긴다’ 혹은 ‘파낸다’ 라는 식의 전형적인 동작-용언들은 지나치게 협소한 접근이자 평면적 서술일 테다. 다만 아주 일반적인 캔버스 작업이나 디지털 툴을 보조적으로 사용하여 회화적 이미지를 생성해내는 여타의 작업에 비해 그의 작업들로부터 강인한 감각과 유연한 속도감을 훨씬 구체적으로 전달받게 된다. 표면에 묻어난 다양한 흔적들로부터 예리하게 파내는 힘과 둔중하게 찍어내는 압력을 시간의 역방향으로 복기해 보는 일은 평면과 입체, 이미지의 생산 과정과 결과값 사이에 놓인 블랙박스를 들여다 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얕기의 깊이를, 빠르기의 느리기를, 좁기의 넓기를 가늠해 보는 일이다.

 

최근작이라   있는 제주 곶자왈의 풍경 연작(2017~) 잠실의 아파트 단지 풍경  나무들을 목판으로 담아낸 <나무들_서울>(2020) 시리즈를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어떤 변화들이 본능적으로 감지된다. 제작 테크닉이나 설치 방식의 변화, 주제의식의 심화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태도와 작업의 호흡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작업이 발산하는 좀 더 넓어진 에너지로부터, 세계를 바라보는 관조적 태도로부터 비롯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꾸준한 작업 공정과 광폭한 몰입의 경험을 몸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무엇인가 새롭게 발굴하고 이미지로 생산해 내야 하는 숙제를 머리에 지고 사는 이의 발걸음은 어떠한가. 숨부터 가빠지고, 입이 마른다. 가장 가까운 삶의 반경 안에서 매일 마주하는 풍경의 변화를 눈과 마음에 저장해두고, 작업실 안에서 느굿하게 판각해 나가는 손길에는 불필요한 초조함이나 세계와 경쟁해야 하는 피곤함 따위가 없다. 정말로 느긋했을   길은 없다. 앙다문 주먹에 힘을  주고, 거대한 화면들에 맞서 공격적인 분투를 통해  공간을 채워 나갔을  모를 일이다.   모습 모두 우리가 상상하는 예술가의 실존적 삶이자, 실재하는 허상이기도  것이다.

 

도시의  가운데서 기거하는 오래된 나무들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언제 그곳으로 옮겨와 맹렬하게 생장하고, 어떻게 생을 다하는지 작가는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작업도 입을 닫고 있다. 우리를 쳐다보는  어둑어둑한 화면과   흐드러지게 피어났을 벚꽃 나무 어디에도 구체적 근거나 암시, 추론을 활성화시킬 것들은 없다. 익숙한 것들을 복각해   같지만, 그저 추상적 정경인 셈이다.

 

그러나 곶자왈 숲의 웃자란 나무들로부터, 잠실의 화사한 꽃송이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의 기계적 창틀로부터 문학적 해석의 충동을, 추상을 해체하고자 하는 욕망을, 손쉬운 문명사적 비판행위로부터    떨어져 나와 본다. 그저 목판 위에 커다란 몸을 수그려 줄곧 무엇인가를 파내는 손과 팔목의 움직임, 몸통의 뒤틀림, 척추의 안쓰러운 고통에 대한 짐작을 해본다. 그것이 작업의 감상자이자, 비평가로서 김동기의 작업을 글로 복기하면서 취한 태세이자유지했던 태도다.


끝내 알 수 없었던 것들이 많지만, 단단한 것들을 거스르는 활달한 궤적을, 겨우내 언 땅을 파듯 날카롭게 내리꽂는 손끝의 깊이를, 또 다시 찾아온 텁텁한 봄을 피부로 느끼며 시간의 풍경을 마음 속에 헤아리고 새겨본다. 


깊고, 느리고, 넓게.

 





 

나무들_서울 2020  김동기 개인전  2020.12.3~12.16 갤러리 조선 , 이미지 출처: 김동기 홈페이지
김동기, <벚꽃나무 #11> / 한지에 목판화 / 1820x1220mm /2020



#김동기   #김동기판화


http://dongi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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