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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essay03: 다듬어지지 않는 의식의 흐름대로, 글과같이 하루를.

by 이자성

*의식의 흐름대로. 다듬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기억나는대로. 쓰여진 글.


분명 바쁘게 보내고 있어야 할 주였는데, 전혀 바쁘지 않았다. 몸은 잠에 중독되었고 기력없는 하루가 지속되었다. 무기력했다. 일어나기는 어려웠고 또 무엇을 하자니 고민이었다. 하루의 시작을 맞이해야할 때부터 이미 몸은 노곤노곤해졌다. 또 이렇게 하루가 흘러가야 되는 것인가. 최근에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몸의 피로가 쉽게 가지 않는 나였다. 그러나 오늘마저 누워버린다면 회복이 아닌 포기와 무기력이겠지.


스스로에게 시작의 여유를 주었다. 일어나자마자 씻고 외출준비를 하는 것이 아닌, 우리집 막내 초코와 장난쳐주며 기분좋게 잠을 깼다. 잠을 깨고 나니 밀려와있는 카카오톡에는 오늘 스터디 진행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오랜만에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면 되겠구나. 초코와 놀던 것을 정리하고 씻으러 들어갔다. 천천히. 그 시간을 즐겼다. 지난 일에 어떤 일이 있었던 간에 내가 함께하는 이 공간과 시간을 즐기기로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씻은 후에는 밥을 차려먹고 옷을 입었다. 내가 좋아하는 차이나카라 셔츠와 검은색 슬랙스를. 기분 좋은 샤워, 맛있는 밥, 내가 선호하는 옷들까지. 산뜻했다.


지하철 가는 길에는 평소에 보던 유튜브 대신에 영화를 보았다. 불행히도 자막이 켜지지 않는 바람에 영어듣기 시험처럼 아주 집중해서 듣느라 혼났다. 그래도 대화를 이해하고, 흐름을 이해하며 나름 자막 없이도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마음에 홀로 뿌듯해했다. 으이그.


역에서 내려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이었다. 우리 학교 앞에는 올해 생긴 스타벅스가 있다. 금액을 확인해보니 내 스타벅스 카드에는 한 잔 정도 마실 수 있는 금액이 남아있었다. 스타벅스로 향하는 길에 누군가 나를 붙잡는다. 뭘까. 기업은행에서 어플과 계좌를 만들면 이디야 커피 이용권을 준다며 말을 걸어왔다. 하필 스타벅스 커피사러가는 이에게 이디야 이용권이라니. 내심 황당했지만 어떻게든 신규 고객유치를 해야 오늘 이들은 마음 편히 복귀를 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나 역시 내가 회사를 다닐 때가 떠올라 측은지심을 느끼며 그들의 요청에 응해주었다. 내일 은행권 시험이 있다는 내 이야기를 듣고서는 그들은 적극적으로 내게 조언을 해주었다. 어느 은행은 어떻고, 어느 은행은 또 어떻고. 금융권에 갈 생각이 없었던 나였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들었지만, 만약 금융권을 희망했었더라면 그들에게 많이 고마워했을 것 같다. 착한 분들이었다.


원래라면 이미 도서관에서 공부를 시작했어야할 때이지만, 내 공부는 생각보다 늦게 시작되었다. 아침에 늑장을 부리고, 집 앞 도서관 대신에 약 1시간이 넘게 걸리는 학교의 도서관에 왔으니. 이만저만 시간을 허비한게 아니었다. 그런데 참 희안한 일이 벌어졌다.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약 4시간 동안을 공부했다. 최근에 집 근처 도서관을 갔을 때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곧바로 안절부절 못하던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근래 내가 했던 생산적인 일 중에 가장 효율이 좋았다.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 스트레스는 있었을망정, 공부가 잘 되지 않아서 쉬면서 집에 가버릴까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난 날과는 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은 계속해서 억지로 몸을 이끌고 도서관을 향했다. 그 탓인지 공부는 커녕 집중력 부족으로 시간을 때우다가 저녁시간 대충되서 집으로 들어온 것이 매번이었다. 물론 나도 그러면 안된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당위성을 찾지 못하고 인지부조화로 인해 많이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오늘 아침까지만해도 그 때와 똑같았다. 그러나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조금 여유를 주었다. 조금의 여유를 주었을 뿐인데, 오늘 하루는 너무나도 달랐다. 오늘의 하루를 기억하고 싶다. 힘이 달리거나, 힘이 필요할 때나, 마음의 여유가 필요할 때 오늘의 글을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 마치 오늘의 하루를 잘 쓰여진 글과 같이 쓰지 않았다. 내가 느낀 그대로. 내가 행동했던 그대로를 적은 글이다.





윗 글을 다 써놓고 읽어보았다. 초등학생이 쓴 글마냥, 아니 어쩌면 초등학생이 더 잘 썼을 지도 모른다, 충격적이구나. 읽고나니 발행을 할까말까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이토록 나에게 아무런 제약, 통제, 절제없이 하루를 보낸 날이 있었나 싶다. 그러기에 이 글 역시 그 하루를 쓴 글이므로 퇴고와 다듬기 없이, 마무리를 짓기로 한다. 즐거운 하루였다.




Written by J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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