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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솔직한 나에게. 현실을 마주하길 바라며.

꽤나 잔인하지만 외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에게 쓰는 쓴 매

by 이자성

이별은 상대방의 희생으로 담보되었던 안정의 삶을 종료를 뜻했다. 꿈만 좇던 안일한 삶에서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멀쩡한 기업에 나올 때도 후회는 없었다. 나는 젊었고, 하고 싶은게 많은 나이였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월급 따위는 의미 없었다. 부모님의 그늘에 현실성있는 고민은 뒷전이었다. 물론, 그 무책임한 행동을 커버리지하기 위한 당신들의 희생을 너무 나중에 되서야 알았다. 난 결국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겠다며 땡깡 피우는 어린 아이와 같았는지도 모른다.


한 번 사는 인생 내 뜻대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호기롭거나, 세상살이를 몰랐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삶에 불안정이란 단어가 끼워질 줄은 생각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잘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겠다는 떵떵거림과 달리, 내 베짱은 생각보다 크지 못했나보다. 20대 때 나는 사회가 정해놓은 로드맵을 그대로 걸었었다. 어릴 적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도전을 안해본 것은 아니다. 다만 성격이 급해 대부분 중도에 그만 두었다. 나이를 돌이켜보니 내가 하고싶었던 것들은 대부분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영화배우를 꿈 꾸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대중들 앞 무대에 서는 것들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하는 방법을 몰랐거나, 그 정도의 능력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거나,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경계의 모호함 속에 갈등하며 제대로된 노력을 하지 않았다. 기회라는 것은 찾아오는 것인 줄 알았지만,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너무 늦은 나이에 알아버렸다.


나는 이기적이다. 내가 하고싶은 것들을 하면서도, 성공한 삶을 살고 싶다. 결혼도 하고 싶고 가정도 가고 싶다. 하지만 그 모두를 동시에 가지기엔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사람들이 왜 기업에 다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그 안에 있는지 너무 늦게 깨달았다. 진학사를 퇴사할 당시 아버지가 왜 다시 들어가고싶은 마음이 없었냐 물어보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어쩌면 아버지는 지금의 내가 맞이할 현실의 고통과 고뇌를 예상하셨는지 모른다. 지금 이 글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체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나이다. 더 이상 외면하며, 우울증에 빠져 살 순 없다. 스스로의 한심함에 분노에 일깨워야 한다. 지난 1년 간의 삶은 너무 한심했다. 더 이상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


현실을 마주해야할 자세를 길러야 한다. 내가 하고싶은 것은 충분히 했다. 후회는 없다. 결단을 내려야한다. 커리어패스를 어떻게 쌓아가야할지는 내가 선택해야한다. 매일을 연말이라며 안일하게 살기에는 내 인생은 너무 불안정하다. 안정된 삶을 이제는 살 자세가 되었다. 하고싶은 것들을 충분히 했다.


그래서 요즘에 내가 하고 있는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삶은 참 감사한 일이나,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될 수는 없다. 내 불안정을 인생의 동반자로서 반려해줄 것이란 막연한 믿음으로, 내 삶을 외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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