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밤 9시. 어김없이 글을 쓴다. 핸드폰과 애플워치는 충전기에 꽂아두었다. 오롯이 이 시간에 집중한다. 난 매일 크게 성과에 신경 쓸 필요 없는 글을 쓰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내가 원래 하던 일은 글을 쓰는 일이었다. 일주일에 2번 A4용지 2장 분량의 경제 칼럼을 내었다. 그 글들은 네이버프리미엄콘텐츠로 기고되었고, 영상으로 제작되어 일주일에 2편 유튜브에 연재되었다. 유튜브로 수십 만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하고, 네이버 칼럼으로 메인에 걸리기도 했다. 이 글들을 모아 대형 출판사 제안으로 함께 책도 출판했다. 어릴 적 작문대회가 열리면 몇 번 교내에서 가볍게 상을 타던 것이 전부였는데, 알고보니 내 글솜씨는 돈벌이가 되는 의외의 재주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차고 결혼이 하고싶어졌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싶어 글 쓰는 일은 그만 두었고 난 그렇게 은행원이 되었다.
은행원으로의 변화는 유쾌하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서 <내가 잘하는 일>로의 변화였다. 딱 내가 <좋아하는 일>이 빠졌다. 평소 겁이 많은 성격때문에 남들보다 몇 번이나 더 서류를 확인하는 습관은 은행원으로서 제격이었다. 하지만 일을 잘한다고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동반되었고, 창의성보다 주어진 프로세스를 얼마나 절차대로 잘 행하는지가 업무 퍼포먼스의 주요 척도였다. 내가 밥벌이로 쌓아온 창의성은 필요없었다. 내가 대학 졸업 후 맨 처음 겪었던 나의 창의성을 갉아먹는 것을 이 곳에서 반복하고 있었다. 결국 난 맨 처음 회사를 퇴사할 때 겪었던 회사의 단점을 고스란히 다시 겪고 만다.
약 2년 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글을 구성하는 맥락과 어휘력, 단어의 선택들이 많이 낡아졌음을 몸소 체감한다. 옛날에는 좋은 글감을 발견하면 메모장 한 켠에 적어두며 글솜씨를 길렀었었는데, 지금은 그런 의욕, 열정도 많이 줄었다. 글 쓰는 것으로 밥벌이했었다는 말을 이 글로만 방증하려하면 난 꽤나 오랜 시간에 걸쳐 의심과 해명을 이어가야할 허언증 환자로 취급받았을 게 뻔하다.
내 재주를 이대로 썩히는 것이 아까웠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하루에 한 시간. 목적없는 글을 쓰기로 했다. 옛날에는 조회수에 목이 메어 한 문장 한 문장에 혼신의 힘을 다 했다. 지금 다시 옛날과 같은 수준의 글을 쓰려한다면 퇴화된 글솜씨에 금방 포기할 것이다. 그래서 매일 하루에 1시간 시청자, 독자의 눈치 볼 필요없는 글을 쓰기로 했다. 때로는 의미없는 글이 될 수 있고, 때로는 과한 글이 될 수 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매일 새로운 주제의 습작은 잠들어있던 뇌를 깨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동시에 때로는 일기처럼 그 날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기록물의 역할도 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메마른 가뭄 속 땅과 같다. 이 메마른 땅에 성급히 씨를 뿌리지 않겠다. 매일 물을 떠다 축축히 만들고, 비옥한 토양을 만들겠다. 나라는 꽃이 다시금 만개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