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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동 미용실

by 이자성

집에 도착하니 밤 9시였다. 안산에서 서울 출퇴근은 퇴근 후 저녁을 상당히 짧게 만들어 버린다. 퇴근하고 미용실을 다녀왔을 뿐인데 집에 도착하니 밤 9시였다. 당근으로 판매할 물품을 택배로 보내고 나니 하루가 끝나버렸다. 서울을 떠나니 머리 자르는 것마저 큰 일과가 되어버렸다.


암사동에서 살 때 단골 미용실이 있었다. 암사역 4번출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프랜차이즈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는 곳이었다. 프랜차이즈 간판이라도 디자이너 실력은 천차만별이라 신용이 어려울 수 있으나, 내가 이용하던 암사역 미용실은 실력이 수준급이였다. 디자이너는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있고, 그런 디자이너를 나는 신뢰했다. 별도로 주문 없이 의자에 앉아 30분 정도 눈 감았다 뜨면 머리는 완벽히 마무리 되어있었다. 머리 자르며 뜬 눈으로 미용사를 감시하는 수고를 벌이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암사동을 떠날 당시 이 미용실을 더 이상 이용 못하게 된 것이 많이 아쉬웠다. 안산에서 비용 저렴한 곳을 대체재로 찾긴 했지만, 서비스로 단골을 만들기보단 가격으로 경쟁하는 곳이었다. 내 머리를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자를까같은 고민을 해주길 기대하는 것은 큰 사치였다. 가끔 머리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암사동 선생님이 생각이 나곤 했다.


그러던 중 지난 달 오랜만에 미용실에 갈 명분이 생겼다. 자라에서 산 자켓의 팔 길이를 줄여야할 일이 생긴 것이다. 암사동엔 저렴한 가격에 수선을 해주는 집이 있었다. 나이 드신 어머님께서 하시는 곳이었는데 시세의 절반 가격이었다. 때마침 수선이 필요한 옷들이 꽤나 있었고 옷수선을 맡기러 암사동에 가는 김에 미용실까지 간다면 동선과 시간 비용 모두 효과적으로 절약할 수 있었다. 특히 회사에서 지하철로 20분 거리면 암사동을 갈 수 있었기에 암사동으로 가는 것에 대해 큰 결단력은 필요하지 않았다. 수선이 필요한 옷들을 챙겨모은 뒤 수선집에 옷을 맡기고 미용실을 방문했다. 거의 9개월만에 다시 찾은 미용실 선생님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오랜만에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내 헤어스타일을 선사해주었다. 올 일이 있으면 자주 오라는 반가운 말과 함께.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오늘 난다시 똑같이 수선할 옷들을 안산에서 아침부터 챙겨 퇴근하고 수선집에 다녀와 그 미용실을 다녀왔다. 이제는 수선할 옷들도 많이 없다. 다음 달에는 어떤 것을 명분으로 다녀와야할 지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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