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나는 왜 그가 떠오를까
그리움일까 외로움일까. 사랑해서 생각나는 것일까, 외로워서 생각나는 것일까. 지난 월요일 2년 간의 연애에 마침표를 찍었다. 만난 기간이 무색하게 싱겁게 끝이 났다. 나는 늘 그랬듯이 밀어냈고, 그는 붙잡았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마지막이 있는 법, 마지막에 밀어내버린 그는 더 이상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왜 그가 떠오를까.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후련했던 감정이 더 컸을지 모른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라고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2년 간 쌓아온 그와의 말할 수 없는 익숙함을 잊어내는 것. 그것 하나는 꽤나 힘들게 느껴진다. 하지만 난 인정해야 한다. 그와 앞으로 인생을 함께하진 못할 것이라고. 그저 남에게 빼앗기긴 싫어서 지속해온 관계였다고. 나에게 그는 '계륵(鷄肋)'이었다. 원하든 원치않든 그와 내가 써가는 이야기엔 마침표를 찍어야했다.
우리의 연애는 사랑의 온도를 못이겨 화상의 고통에 몸부리치는 것 같았다. 서로 사랑했지만, 동시에 아팠다. 그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마치 사춘기 고등학생같은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가졌었다. 평범한 대화에서 감정이 상하는 일은 빈번했고, 싸움은 잦았다. 그가 화내는 방법은 자기파괴적이었다. 인간의 밑바닥 심연까지 내비치며 화를 냈다. 마치 다음에 날 다시 안 볼 심산이란 듯이 응어리진 감정을 내뱉었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나에게 온갖 악질적인 말을 배설해내고 나면, 그에게 감정의 안정이 그제서야 찾아왔다. 그에게 싸움은 감정의 해소이자 배설같은 것이었다. 최악이었다.
하지만 불행한 것은 난 그가 내뱉은 모든 단어까지 모조리 기억하고 담아내었다는 것이다. 감정에 치우쳐 해소하기 위해 내뱉은 말이라고 둘러대기에는 그의 말은 꽤나 그의 밑바닥까지 볼 수 있는 실망스러운 말로 가득했다. 그의 말에 상처를 입고 실망했고, 같이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나는 매번 그와 헤어지지 못했다. 그의 애절함과 간절함, 화를 내는 모습을 '굳이' 뺀다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합리화하며 관계를 다시 붙여나갔다. 결국 이 합리화는 날 파괴해 나갔다.
이러한 최악의 관계에서 우리의 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다름 아닌 몸정이였다. 그는 관계에서 뜨겁고 본능에 충실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언제나 내 몸을 맡겼다. 침대에서의 그를 받아들일 때 순간은 그의 잘못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뜨거웠던 침대에서의 날들이 너덜너덜해진 내 감정을 애써 합리화하기에 충분했다. 나를 부숴버리는 싸움 후에도 몸의 욕정이 끓기 시작하면 다시금 그와 만날 수밖에 없었다. 끊어내버리기 어려운 인간의 욕정에 굴레에 얽혀버렸다. 다툼 후의 잠깐의 이별 기간에서도 나말고 다른 이가 그와 잠자리를 하는 것을 상상하면 죽을만큼 싫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그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결혼생활에서도 부부관계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미래를 함께 이어나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 역시 능사가 아니었다. 성욕의 해소가 이뤄지고 나면 난 다시 평정심을 되찾았고, 그와의 싸움은 그가 내게 해로운 사람이란 것을 다시금 상기시켜주었다. 그는 내게 욕구의 해소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뿐 나의 삶의 안식을 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게 우린 2년의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오늘 다시 그가 생각이 난다. 그리움일까 외로움일까. 사랑해서 생각나는 것일까, 외로워서 생각나는 것일까. 2년이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그의 휴대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왜 그가 떠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