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의 젊음은 행복이었을까
Prologue.
난 한국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우수한 작품들도 있는 반면, 적은 내수 시장과 해외수출을 위해 대부분의 영화가 상업용으로 제작이 되기 때문이다. 관객이 영화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만든 큰 그림에 "울어라" "웃어라" "느껴라" 라고 대놓고 외쳐주는 것 같기 떄문이다. 근본없는 억지 신파와 흔히말하는 '국뽕'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서 나만의 관점으로 극을 다가갈 수 있고, 어거지 배경음악, 과장된 인물들의 액션없이 충분히 몰입을 통해 긴장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한 마디로 우리가 평소에 사는 삶의 사건을 찍어놓은 듯한 그런 영화. 근데 이런 flow를 2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적용시킨 영화가 한 편 있다. 폴란드의 홀로코스트를 배경으로 그린 영화 폴란드 1943
원제는 하지(夏至)라고 한다. 일 년 중에 가장 낮이 긴 날로 표현된 영화의 제목. 유독 길었던 하루는 힘들며 고되고 버티기 힘들었던 날이다. 영화의 원제는 주인공들이 겪는 고난이 만든 그들의 긴 하루로 표현한 것 같다. 1943년 폴란드의 제각기 다른 인물들로 이루어진다. 유태인학살부대로 강제징용되어 온 소년 귀도, 폴란드에서 철도잡역부로 일하는 로멕, 독일군 잡부로 학살에서 잠시 배재된 프랑카와 학살 속에서 탈출한 이름 모를 소녀까지 그 시대에서 나올 수 있는 계층들의 인물들이 다 등장하는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이 영화만의 특징은 주인공들의 연령대가 모두 청춘들이란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수많은 계층들의 영화가 있다. 독일을 저지하는 미연합군, 학살의 피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유태인, 학살의 당위성에 양심적 가책을 고뇌하는 독일군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입장의 면이 아닌 그 시절의 우리 현재 청춘들을 그려줌으로써 새로운 면을 보여주었다.
기성세대가 만든 잔혹한 현실이기에, 청춘들은 기존 사회가 만든 규율에 역행한다. 폴란드인인 로멕의 도둑질을 눈감아주며 보내는 귀도, 유태인 학살을 자행하는 독일군을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는 로멕, 독일군과 청춘의 애정을 즐기는 프랑카. 어른과 사회는 그들을 적으로 규정해놓았지만, 그들 서로는 적이지 않았다.
영화는 심심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심심하게 흘러가는 묘미로 더욱 집중하고 빠져들 수 있다. 상업 영화를 보며 한국영화 특유의 답없는 신파와 배경음악들이 들려오면 이내 아무리 훌륭한 각본과 몰입이어도 "아 이거 영화였지"라며 흐름을 깬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것이 없다. 신파도, 배경음악도 없는 인물과 배경 그 자체의 영화이다. 이 때문에 인물들의 관계와 심리를 더욱 잘 공감하며 녹아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지루할 수 있겠다는 우려도 있지만 100여분이라는 짧은 런닝타임은 그럴 생각 들 세 없이 영화를 마무리하게 해주었다.
폴란드 1943의 결말은 소년들의 한 단계로의 성장으로 마무리 된다. 로멕과 귀도는 각자의 자리에서 성숙해나갔고, 영화 처음의 시작 신과 동일하게 끝이 나고 묘미한 차이로 변화를 알리며.
폴란드 1943.
청춘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긴 하지(夏至)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