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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2002) 그리고 홀로코스트

그렇듯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돌이켜봐야한다.

by 이자성

Prologue.

누구에게나 그런 영화는 있다. 남들이 칭송하는 명작이지만 왠지 끌리진 않고, 그래도 한 번 쯤은 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자신의 선호도에 따라 언제나 대안책으로 선택되어 계속 감상을 미루게 되는 영화. 나에게 피아니스트는 그런 영화였다. '명작'인 줄은 알지만, 남들이 느낀 '명작'이지 굳이 내 명작이 아니었던 것이 관람을 미루었던 이유이다. 게다가 주로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감독이 그린 큰 그림과 반전 속에 희열을 느끼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피아니스트는 더욱 더 끌리지 않았다. 결국 대부분의 보고싶었던 작품을 대부분 보고 난 후 영화를 보게 되었고, 2시간 후 왜 이제야 봤을까라는 스스로 반성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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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아니스트는 폴란드의 유명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폴란드의 국영 라디오 방송국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던 그가 나치의 폴란드 점령과 유태인 학살을 피해 지낸 일들을 보여준다.


폴란드가 점령당한 후 나치는 유태인 거주지역을 제한하고, 폴란드 내 유태인을 거주지역으로 죄다 몰아넣는다. 들고 다닐 수 있는 돈도 1인당 제한했으며, 어깨에는 유태인 표시를 한 띠를 두르게 했다. 명령에 어긴다면 순찰 헌병들에게 가차없이 매질을 당했다. 거주구역에 감당치 못할 인구를 밀어넣는 것은 수 많은 폐해를 낳게 하였다. 부족한 음식에 사람들은 굶어 죽어가고, 생존하기 위해 동포를 서로 밀고한다. 참혹한 환경 속에서 스필만은 독일 치하 유태인경찰관을 한 친구에게 유태인경찰 역을 제안 받는다. 그러나 스필만과 그의 가족들은 동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은 할 수 없다며 거절한다. 스필만이 그들과 타협한 것은 딱 한 번 잡혀간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이 후 독일은 유태인구역 이주를 명목으로 유태인들을 기차에 태우기 시작한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것이었겠지. 50만이나 되는 유태인들이 기차에 오른다. 이 때 스필만의 친구인 유태인 경찰은 그를 기차에 태우지 않고 밖으로 빼내준다. 그리고 탈출과 숨어지냄으로 연명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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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필만은 질겼다. 고된 노역과 보통의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극악의 환경, 언제나 부족한 영양상태로 인한 신체의 무너짐까지, 삶을 이어가기에는 삶이 죽음보다도 더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피아니스트라는 자신의 삶의 업이자 자부심을 바탕으로 힘들 때면 피아노를 치는 선율의 상상을 통해 극복해 나가곤한다. 계속 살아감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스필만은 더욱 끈질기게 버텨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한 의지도 극복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배고픔이었다. 음식을 찾던 중 따지 않은 통조림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힘겹게 열은 통조림은 땅바닥으로 굴러간다. 그리고 독일군의 군화를 부딪히고 멈춰선다. 그리고 독일군화, 바지, 상의 그리고 독일군의 얼굴까지 화면에 가득 찬 모습이 나온다. 스필만은 그 때 느낀 좌절감은 모든 것이 무너진 느낌이었을 것이다. 끈질기게 버텨온 삶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온 것인가란 생각도 들었겠지. 독일군은 계급이 높은 장교였고, 스필만에게 직업을 묻는다. 스필만은 피아니스트라고 대답을 하고, 독일군 장교는 그에게 피아노 있는 방으로 데려가 피아노를 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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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에서 영화에서는 [발라드 1번]을 연주했으나, 사실 연주했던 곡은 [야상곡 C# 단조]였다고 한다. 그래도 그럴 것이 자신의 목숨값을 다해야 할 이 위기에 순간에서 [야상곡 C# 단조]을 쳤다면 얼마나 심심해보였을까. 자서전에서 스필만은 이 당시 도피생활로 인해 피아노를 2년이나 못 친 상태였고, 동상으로 인해 얼어버린 손과 깎지 못한 손톱으로 인해 전혀 피아노를 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오랜 시간동안 방치된 피아노는 제대로된 음도 내주지 못했고, 자신의 연주가 그저 빈 방의 우울한 메아리였다고 한다. 그래도 영화는 [발라드 1번]을 연주하는 연출을 해주며, 스필만이 죽음을 코 앞에 둔 순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걸 표현해주었다.


스필만의 음악에 심취해서, 스필만을 도운 것인지. 아니면 유태인에 대한 측은지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후 독일 장교는 스필만의 도피생활을 도와준다. 먹을 것도 가져다 주고, 심지어 추운 겨울날을 버티라고 자신의 코트도 주기도 한다. 결국 스필만은 그 독일 장교 덕분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이 후 독일이 패배를 선언하고 스필만은 다시 말끔했던 모습으로 피아노를 다시 친다. 영화 도입부 독일의 공습으로 인해 멈췄던 [야상곡 C# 단조]가 엔딩 신에서 완전히 연주되며 결말을 알리고 있다. [야상곡 C# 단조]의 뜻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평화로운 상태'라고 한다. 도입부는 그 평화로운 상태를 가지지 못했지만 엔딩에서는 완전히 연주하며 그가 맞이한 평화를 보여주는 것이겠지.


스필만은 자신을 도와준 독일 장교를 찾으려고 백방으로 알아나섰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빌헬름 호젠펠트(Wilm Hosenfeld)'임을 알아내고 그를 구하려 노력하나 정치적 상황 속에 결국 구해내지 못한다. 빌헬름 호젠펠트는 소련의 수용소에서 몇 년 후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등장은 영화 내 몇분 내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강렬한 인상을 주었으며, 유태인을 도운 착한 독일장교의 역할 탓인지 그에 대한 이미지는 잊혀지지 않았다. 최근에 본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독일인 기자역으로 그가 다시 나왔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다만 세월이 흘러 피아니스트의 젊은 시절과 달리 많이 나이가 들었던 그의 모습에 측은지심이 느껴졌다. 영화는 유태인의 관점에서 본 홀로코스트를 매우 상세하게 묘사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중 우수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쉰들러 리스트]와 견주어도 연출력에서 뒤쳐지지 않는다. 그 당시를 이해하기에 충분한 영화였던 것 같다. 애드리언 브로디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혼자서 이 영화를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피아니스트

그의 연주가 만든 인생의 [야상곡 C# 단조]




Written by J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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