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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믿 Oct 25. 2023

내치지 못한 소고깃국

자식의 기생

몇 달간 질질 끌고 왔던 브랜드 스토리 작업도 끝났고, 브런치 작가 등록도 마친 날이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자 꼬릿한 향이 풍겨 왔다. 국간장인 듯했다. 주방에서는 가스불 피어오르는 소리와 기포가 표면에서 터지는 소리가 뒤섞였다. 시뻘건 국물, 잔뜩 담긴 건더기. 소고깃국이었다. 순식간에 허기가 졌다. 바로 찬밥을 한 그릇 퍼서 국에다가 말았다. 푹 끓여내지는 못해 우적거리는 파와 콩나물을 씹으며 말했다. 브런치라는 곳에 작가 등록을 했고, 지지부진하던 브랜드 스토리도 끝냈다고. 그리고 웹소설을 써볼 거라고 처음으로 말했다.


‘언제까지’, 돌아오는 대답이었다. 답답하다는 듯이 눈을 껌뻑이는 엄마의 반응에 일단 답을 했다. 비축분을 쌓아놓고 일을 시작하려면 연말, 아무리 늦어도 내년 초까지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이런 반응을 보이면 나도 말을 하기가 싫다고.


그 뒤로는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감정이 치밀었던 탓일까. 더듬어 보자면 부모의 마음도 이해해줘야 한다는 말이었다. 군대에 대학까지 6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는데, 1개월 만에 그만두는 게 정상은 아니라는 말도 있었다. 부정적인 답변. 내가 무언가를 시도하려니 돌아온 것은 부정적인 답변뿐이었다. 못 참고 내뱉어 버렸다.


26년을 참았는데, 이제 더는 못 참았던 거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고. 결국 니 선택이었다는 엄마의 말. 맞다. 긍정했다. 하지만 부모의 영향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질문했다. 내가 만약 20살 때 문예창작과나 국어국문학과를 간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뭐라고 답했겠냐고. 지금이랑 다르지 않을 거란다. 그런 데 가서 뭐 먹고살 거냐고. 그렇다면 재학 도중에 다른 길로 가겠다고 말했다면? 비슷한 반응이었다. 대한민국 부모라면 대부분 자신과 같을 거라는 반응도 덧붙였다. 다수가 따르면 그건 맞는 길일까.


엄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니 반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구나. 의심스러웠다. 내가 일을 하는 것의 의미가 뭔지 의심스러웠다. 그런 의향을 담아서 질문했다. 답변은 정석적이었다. 한 개인으로서 경제적인 독립을 하는 것. 그렇다면 독립을 하겠다.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또 그건 거부했다. 당장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 나가서 고생하지 말라고.


결국 엄마도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었고, 나도 엄마를 괴롭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다만 엄마가 바라보는 바람직한 삶과 내가 바라보는 바람직한 삶은 차이가 컸다. 엄마에게는 어떻게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해 돈을 모아서 집을 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 나는 달랐다. 아직 제대로 사회활동도 못했기에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정의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되겠지. 이 시도가 내 죽음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도전해 보는 삶이 바람직해 보였다.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인가 보다. 돌이켜보니 내가 원했던 건 부모로부터의 지지였다. 나의 시도가 헛짓거리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여주기를. 살아오면서 한 번쯤은 뭘 하고 싶냐고 물어봐주기를. 한 달 만에 병원을 그만두었을 때 간호사 면허증 말고 내세울 게 뭐가 있냐는 말 대신 뭘 하고 싶냐고 물어봐주기를. 그것들을 소망했다.


자식은 부모에 기생하여 산다. 그런 만큼 부모의 의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당장에 눈앞에 놓인 소고기 국밥 한 그릇. 이조차도 온전히 내치지 못한 채 입에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으니. 불효인 걸까. 지금이라도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할까. 나의 선택이 의심스럽다. 이럴 때일수록 굳게 믿어야 한다. 바라는 미래의 모습을. 그래야 조금이라도 그 미래에 다가갈 수 있으니. 같은 후회라도 시도 끝의 후회가 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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