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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믿 Oct 28. 2023

브랜드 스토리(2)

결국 또 반려당했다. 애초에 일을 받을 때 수정은 1회만 하도록 되어 있어서 여기서 끝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마무리하고 싶어 한 번 더 수정한다고 말했다.


이전 글에서 장소를 묘사하는 데 너무 치중했다는 말을 했다. 이가 귀신 같이 피드백으로 돌아왔다. 단순히 카페를 묘사하는 글을 원하는 건 아니다. 피상적이다라는 피드백으로. 그 외에도 여러 피드백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핵심이 되는 피드백은 이것이었다. ‘우리 업장이 왜 만들어졌고 무엇을 위해 갈 것이며 무엇을 당신을 위해 해줄 것이며 그래서 당신들은 우리가 필요하다 이런 게 담겨야 할 것 같아요’. 추가로 참고할 수 있는 문장도 받아 들었다.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러면 이해될 것이다. 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될 것이다.

저널리즘의 창시자, 조지프 퓰리처


마지막이니만큼 최대한 열심히 해보자. 그런 마음에 저 문장이 담겨 있는 책도 구입했다. ‘브랜드 스토리 10가지 기법’이라는 책이었다. 거기에 원래 정리해 두었던 ‘무기가 되는 스토리’, ‘스토리의 과학’까지 취합해서 자료를 만들었다. 이를 참고로 목차를 구성하고, 실제 내가 작업해야 하는 브랜드 스토리에 적용해서 정리했다. 최종적으로 질문까지 작성해서 우선 보냈다.


최대한 명료하고 또 자세하게 작성했다.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반만 그랬다. 반은 만족스러워했고, 반은 아니었다. 꽤나 복잡한 구조였다. 브랜드를 운영하는 업주가 직접적으로 내게 의뢰를 한 게 아니었다. 업주가 브랜드 경영 컨설턴트에 의뢰를 해서 진행 중이었고, 그 컨설턴트가 다시 내게 브랜드 스토리 작성 의뢰를 맡긴 상황이었다. 여기서 업주는 내 정리본을 마음에 들어 했고, 컨설턴트는 그렇지 않았다. 책에 있는 내용은 너무 정석적이고, 자신이 바라는 방향과 조금 다르다고 말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까. 1, 2차 피드백 모두 브랜드를 운영하는 업주에게서 받았다. 이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갈아엎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컨설턴트가 원하는 방향과는 멀어졌다. 이를 전하자 일단 컨설턴트의 피드백을 반영해서 완성한 작업물을 자신에게 보여달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게 피드백을 기다리기를 잠깐. 길어지는 것 같아서 언제쯤 보내줄 수 있냐고 물었다. ‘이슈가 좀 있어서 늦어졌다. 이번 주 내로 보내드리겠다.’는 답장에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렇게 1달, 2달. 서서히 잊혔다. 이렇게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도 있구나. 내 글솜씨가 부족했구나 반성하면서. 그러다 어느 날 휴대폰이 울렸고 확인해 보니 피드백이 왔다. 3달, 답변이 온 것은 3달 뒤였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그 이슈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끝은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몰랐다. 한창 병원에서 구르고 있었을 때는 손도 대지 못했을 테니까.


피드백은 ‘짧은 글 + 운문형’이었다. 컨설턴트는 제일 처음에 받았던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기를 원했다. 이를 반영해서 최대한 자료에 있는 단어를 활용해 문장을 가꾸었다. 최대한 짧게, 핵심만 담아서. 그렇게 완성하자 글자는 공백 포함 203자. 처음 썼던 브랜드 스토리가 공백 포함 1000자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심하게 다이어트를 한 셈이다. 이를 보내자 별다른 말 없이 승인을 받아낼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실제로 결과물이 만족스러워서 시원하게 승인을 받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수정 횟수가 초과되어 어쩔 수 없이 승인한 것일까. 이를 물어보는 행위도 실례겠지. 과연 어떻게 해야 했을까. 내 의견이 너무 과하게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바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 타인의 글을 쓰는 게 이렇게나 어렵구나.


내 글을 쓸 때는 막연함이 없다. 글을 쓰는 데 시간은 걸릴지언정 가만히 생각하다 보면, 메모해 놓고 묵혀두면 어떻게든 풀어낼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의 글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기에. 그 사람도 내가 아니기에. 결국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야만 하는데 익숙지가 않다. 반복해서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취지로 운영하던 SNS에 공지글을 올렸었다. ‘기록을 남겨드립니다’라고. 글을 써준다는 의미의 글을 올렸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연락이 온 적이 없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고, 머릿속에 있는 생각의 간극을 줄이는 일.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면 내가 찾아갈 수밖에. 접촉할 수 있는 창구를 늘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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