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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믿 Nov 04. 2023

술이어야 할까

편두통

생소한 참치회. 익숙한 가라아게. 정겨운 오뎅탕과 꼬지, 감자튀김들. 책상에 둘러 앉은 친구들. 시답잖은 하지만 시답잖지 않기도 한 대화들. 모두가 좋다. 하지만 곁들이는 술들은 잘 모르겠다. 맥주, 톡 쏘는 탄산감은 좋지만 특유의 향을 계속 맡다보면 취하지도 않았는데 구역감이 든다. 소주, 알콜향 외에는 딱히 없어 거북함은 없지만 씁쓸하기 그지 없다. 맛이 없다. 그렇기에 알콜향이 스며들지 않은 달달한 술들을 선호하는데, 이런 술들은 가격이 살벌하다. 음료수가 더 맛있고 저렴하다. 취기가 좋은가 하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


갓 스무살이 되었을 때는 취하는 것이 두려웠다. 취한 내가 어떤 말을 내뱉을지 몰랐기에.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가감없는 나의 모습을 드러내기가 두려웠다. 조금 나이가 차고 나의 모습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할 때, 꽤 많은 양의 술을 먹어보았다. 기분 좋은 취기가 돌 줄 알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술이 잘 안 맞나 보다. 일정 수준 이상 술이 몸에 들어가면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왼쪽 측두엽과 두정엽에 통증을 전달하는 심장이 하나 박혀 있다. 고질병인 편두통이다. 마치 맥박을 치듯 뛰는 고통에 머리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다.


맛과 체질. 그 무엇도 내게 맞지 않음에도 왜 계속 술자리를 찾았을까. 술자리는 술만으로 구성되지 않으니까. 술을 제외한 나머지가 좋았으니까. 그렇다면 술만 안 마시면 되지 않나. 과거의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계속 술을 따라달라는 친구에게 귀찮은 나머지 알아서 먹으라고 말했다. 그럴 거면 혼술을 하지 왜 같이 먹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혼자 술을 따라마시면 외롭다고 느꼈다 보다.


그때 깨달았다. 술, 거기에서부터 비롯된 문화. 이것도 하나의 의식이구나. 사람의 감정을 담기 위한 의식이구나. 그런 의미에서 술을, 양보해서 달달한 술을 마셨던 듯하다.


하지만 어제 또 생각이 바뀌었다. 나의 체질을 알기에 양을 알아서 조절한다. 어제도 많은 양의 알코올을 몸에 넣지 않았다. 해봤자 소주 3~4잔 정도에 하이볼 한 잔. 마실 때까지는 몰랐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고 나니 증세가 심해졌다. 크레센도. 강렬해지는 편두통과 따라오는 오심. 결국 토를 하고 나서야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속은 편해졌지만 두통을 조절할 방법이 없었다. 편두통이 찾아올 때 유일한 희망. 타이레놀을 먹을 수 없기에. 타이레놀의 주된 부작용이 간 독성이다. 술을 마시고 먹을 경우 이 부작용이 극대화된다. 다른 진통제, 예를 들자면 아스피린을 먹으면 되지만 잘 마시지도 않는,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는 술 때문에 아스피린을 구비하기는 그랬다. 그랬지만 강렬한 통증을 마주하자 후회됐다. 구비해 놓을걸.


참을 수밖에 없었다. 통증은 어찌할 수 없지만 이 통증을 받아들이는 나 자신은 통제할 수 있다고. 몇 번이고 되내이다 보니 의식은 끊어졌고, 다시 일어나지 두통은 말끔하게 사그라들었다. 격렬한 편두통과 구토를 겪다 보니 결심했다. 술은 피해야겠다고.


술은 감정을 드러내거나 증폭시킬 뿐, 없던 감정을 내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굳이 술을 마시지 않고 마음을 좀 더 열어젖히면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잔에 술 없이 감정을 담으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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