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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믿 Nov 01. 2023

결기승전

마늘 간계밥

이른 아침, 주린 배를 이끌고 주방으로 갔다. 라면과 시리얼은 질리고, 해 먹자니 마땅한 재료는 없는 상황. 냉장고를 여니 찬밥과 계란이 보였다. 간만에 간계밥이나 해 먹자. 익숙한 몸짓으로 밥을 덥히고, 프라이팬을 꺼내 계란을 구웠다. 자글자글. 먹음직스럽게 튀겨지는 계란을 보다가 문득 떠올랐다. 다진 마늘을 볶아서 같이 비비면 더 맛있지 않을까. 바로 얼려둔 다진 마늘을 꺼내 팬 위에 올렸다. 괜히 마늘이 타지 않게 이리저리 팬 위치를 옮기다 보니 순간 기울어졌다. 다급하게 쏟아지려는 팬을 잡다가 손가락 끝이 데어버렸다. 그럼에도 마늘향이 짙게 배인 간계밥은 좋았다.


심적 여유가 찾아와서일까. 요리를 가끔씩 하고, 또 유튜브로 요리 영상도 본다. 쇼츠로도 레시피를 확인하는데, 몇몇 쇼츠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 있다. 첫 장면에 완성된 요리가 나온다. 그 뒤에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하는 장면이 나오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연결된다.


문득 웹소설에서의 결기승전이 떠올랐다. 흔히들 알고 있는 기승전결의 변형 버전이다. 도입부로 시작해서 문제가 발생하고, 절정에 달했다가 결말에 이르는 기승전결. 이 중 결말에 해당하는 ‘결’을 제일 앞으로 끌어당긴다. 이런 구조를 취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웹소설과 종이책은 구조적으로 다르다. 종이책 같은 경우에는 말 그대로 책의 형태로 발매된다. 독자는 꽤나 많은 분량의 글을 한 번에 구입해서 읽는다. 그런 만큼 초반이 지루하고 늘어져도 참고 읽는다. 웹소설은 다르다. 초반 부분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아무 부담 없이 이탈할 수 있다.


이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클리프행어, 우리말로는 절단신공을 활용해야 한다. 기승전결 중 가장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 부분에서 한 화를 끝맺는 것이다. 독자는 호기심에 다음화를 구매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다음화를 보면 결부터 시작해 다시 전에서 끝난다. 최종적으로 한 화가 ‘결기승전’ 형태를 이루게 된다.


결론을 앞에다 끌어다 쓴다. 비슷한 경우를 어디선가 또 봤다. 두괄식 글쓰기이다. 이는 자기소개서 특강을 들을 때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결론을 앞으로 끌어와 상황과 사건을 설명한다. 그 뒤 어떤 노력, 행동을 했는지를 작성하고 마지막에 다시 한번 결과와 결론을 구체적으로 작성한다.


유튜브 쇼츠와 웹소설과 자기소개서. 쇼츠는 완성된 요리의 모습을 앞에 끌어다 보여줌으로써 뒤의 조리과정을 보도록 만든다. 자소서는 결론을 먼저 머리에 각인시킴으로써 논점을 흐리지 않는다. 웹소설은 결론을 고의적으로 뒤로 미룸으로써 이탈하지 않도록 만든다. 조금씩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결’을 앞으로 끌어당기는 점은 동일하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는 걸 보니 유용함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을까. 잠시 상상해 본다. 친구를 만났다. 대화를 나눈다. 친구는 논리 정연하게 말한다. 결론을 앞에 말하고서는 그 결론에 맞는 내용을 이어나간다. 나도 결론을 먼저 말한다. 만남의 목적이 달성되면 시원하게 헤어진다. 담백하지만 뭔가 차갑다. 뭔가 재미가 없는 것 같다.


불완전함. 불확실성. 사람은 이러한 요소들에서 불안을 느끼지만 그 외의 것들도 주는 듯하다. 14세기 승려 요시다 겐코는 씨는 말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그 불확실성이다.’ 사람들이 벚꽃을 좋아하는 건, 또 벚꽃을 찾아가는 건 단지 예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짧게 피고 지는 그 덧없음 때문이다. 짧은 수명에도 불구하고 가 아니라 그 짧은 수명 덕분에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길도 그렇다. 직선으로 뻗어 확실해 보이는 길보다도 구불구불한 길이 걷는 맛이 있다. 또 운전하는 맛이 있다. 요리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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