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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믿 Nov 06. 2023

맛과 양

음식 영상을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그렇게 몇 번 누르다 보니 나온 국수 영상. 미친 듯이 양이 많다는 설명에 이끌려, 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소개에 이끌렸다. 마침 가고 싶은 친구 한 명이 있어 바로 약속을 잡았다. 정류장과 역이 겹치는 곳에서 만나 식당으로 향했다. 애초에 국수 거리 같은 곳이었나 보다. 여럿 국숫집이 연이어 등장했다. 그러다 베트남어와 한국어가 동시에 적혀 있는 베트남 음식점이 보였다. 잠시 혹했다. 베트남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먹어본 적이 없었으니. 현지의 맛은 과연 어떨까. 그런 생각을 잠깐 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원래 가기로 한 식당으로 발을 돌렸다.


누르스름한 간판.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간소한 식탁과 의자들. 안은 북적북적했다.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빈자리에 앉았다. 주문은 잔치국수, 비빔국수, 부추전. 시키고는 주변을 가만히 돌아보았다. 벽에는 과거 대구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었구나. 그런 감탄에 빠지기를 잠깐. 종업원이 다가와서 혹시 대기하지 않고 들어왔냐고 물었다. 얼떨떨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무도 막는 이가 없었고, 줄도 보이지 않았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웨이팅 관리하는 분이 잠깐 자리를 비운 건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줄을 서야 했던 건지. 그 빈틈을 파고 그냥 들어와 버렸다. 얼떨결에 새치기를 한 셈이다.


주문도 해버렸고, 나갈 수는 없었다. 다행히 줄이 길지는 않아 밀린 분들도 금방 들어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음식들이 식탁 위에 올라왔다. 영상에서 본 대로 양이 푸짐했다. 양은그릇에 한가득 담겨 온 잔치국수를 보고는 감탄했다. 이게 보통이면 도대체 곱빼기는 어느 정도로 많은 걸까. 곱빼기가 무료라고 괜히 추가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비빔국수와 부추전과 소담하게 담겨 나왔다. 즐겁게 비비고서는 앞접시를 2개 가져와 친구와 나눠 먹었다.



부추와 김. 심플하게 고명이 올려진 잔치국수를 호기롭게 집어서 입으로 집어넣었다. 평범한 잔치국수 맛이었다. 진한 육수맛이 느껴지는 게 집에서 먹던 국수와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음미하는 도중에 비빔국수를 먼저 먹었던 친구가 말했다. “멜론향이 나는데?” 그럴 리가 있냐며 코웃음 치며 나도 비빔국수를 한 젓가락 들었다. 오이와 계란지단, 양배추가 올라간 것이 잔치국수보다는 고명이 다양했다. 그것들을 입에 넣는 순간. 친구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고명인 오이에서 풍기는 향이라 짐작했건만, 분명하게 풍겨오는 멜론의 향기. 소스에 짙게 배인 듯했다. 마치 양념장을 만들 때 멜론소다라도 까서 넣은 것 같은. 분명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너무도 안 어울리는 조합. 정신을 차리고서는 다시 잔치국수의 국물을 한 입 떠먹었다. 짙은 국물맛은 여전하지만 끝에 쓴맛이 올라왔다. 멸치 똥을 제거하지 않은 걸까. 그 뒤로는 친구와 큰 말 없이 올라와 있는 음식을 해치웠다. 그나마 부추전은 먹을 만했다. 기름이 흥건하기는 했지만.


저렴한 가격에 많은 양. 하지만 부족한 맛. 맛과 양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지체 없이 양을 골랐다. 하지만 치우침은 좋지 않다고 했던가. 맛의 최저치를 넘긴 다음에야 양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동시에 의아하기도 했다. 11시에 오픈해서 3시에 문을 닫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 집이다. 산업단지에 위치한 식당이라 주변에서 일하는 분들로 채워져서 손님이 많은 걸까.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했다. 가족 단위로 오는 손님도 드물지 않게 보였으니. 친구와 나의 입맛이 까다로운 걸까. 아니, 무탈한 편이다. 결국 입맛은 개개인마다 다르구나.


한번 만드는 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손님의 입장에서야 여러 식당을 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식당을 고르면 그만이지만 요식업자는 다르다. 적지 않은 초기 자본을 들여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남아야 한다. 맛과 양. 이 둘을 저울질해 손님을 끌어야 한다. 어찌어찌 합리적인 지점을 잡는다 하여도 맛이 발목을 잡는다. 정량적으로 파악이 가능한 양과 다르게 맛은 정성적이기에.


애매한 만족감을 안고서 거리로 나왔다. 그러자 다시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 음식점이었다. 저기를 갔다면 오히려 나았을까. 그건 알 수가 없다. 직접 가보지 않는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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