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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믿 Nov 24. 2023

취업했다, 어쩌다 보니

하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막연히 웹소설을 쓴다고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다. 알림이 울렸다. 연락한 지 좀 오래된 카톡방이었다. 딱 한 번의 외주. 그 브랜드 스토리를 쓸 때 연락했던 방이었다. 그 브랜드의 업주가 나한테 따로 연락이 온 것이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한번 만나고 싶다는 얘기였다. 브랜드 스토리 작업물은 마음에 들지 않을지언정 내 태도는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실제로 날짜를 잡기 전까지는.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쓰는 게 어렵지 않았냐, 왜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냐 등등. 크게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얘기를 했었다. 식사가 막바지에 이르자, 자신이 오늘 만나려 했던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실제로 같이 얘기를 해보면서 자신이 운영할 카페의 카페지기에 적합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젊어서 자신이 원하는 인물상과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했다. 안정적인 30대 정도의 사람을 원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실제 방황을 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해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래. 노안이기는 하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한다. 엄마랑 다니면 부부 사이인 줄로 안다. 과장이 아니라 진짜로. 21살 때, 내 나이를 말하자 놀라던 상대의 반응도 기억난다. 아무튼, 그렇게 얘기는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다시 연락이 왔다. 자신의 브랜드 마케터가 될 생각은 없냐고. 나는 마케터랑 전혀 관련이 없는 전공에 아무런 경력도 없는데 무슨 소리인가 했다. 다만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관심이 없던 분야도 아니었거니와 상대방도 내가 초보라는 점을 감안하고 제안해 줬다. 재택근무에 일주일에 한 번 온/오프라인 미팅이라는 조건도 마음에 들었다. 웹소설과 병행하기에 좋아 보였다. 보수는 내가 따질 입장이 아니었다. 그저 충분했다.


간단하게 만나서 면접을 진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서를 썼다. 나랑 일을 하면 재밌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직함은 마케터, 그런데 업주도 나도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랐다. 심지어 일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모두 내가 결정해야 했다. 간단하게 보여준 업무 내역을 살펴보았다. ‘콘텐츠 마케팅’, 이것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바로 클래스 101을 결제했고, 실제 운영 중인 네이버 블로그를 개선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극한의 P인 업주의 정제되지 않은 말을 J인 내가 번역해서 실제 계획을 세우는 것. 이를 인지하면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전의 간호 업무보다는 즐거울 듯하다.


실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구나. 글을 SNS에 올려보자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했다. 그로 인해 외주 업무를 받게 되고, 그게 또 인연이 되어 직장으로 이어졌다. 최근 읽었던 책의 내용이 떠오른다. ‘스틱’이라는 책이다. 거기서 계획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계획대로 진행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특히 전쟁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군대에서는 ‘지휘관의 의도’라는 것을 문서의 제일 위에 기입해 둔다.


“나의 의도는 4305 고지에 주둔하고 있는 제3대대가 적들을 완전히 궤멸하여 무력화시킴으로써 전선을 통과하는 제3여단의 측면을 방어하는 것이다.”


이렇게. 작전 중에 원래 계획이 틀어지더라고 지휘관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으면, 전장에 있는 이들은 바로바로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여 행동할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러한 의도를 세우고는 그때그때 바꿔나가면 되는 거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의도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해보자.


‘믿음을 바탕으로 남의 선택이 아니라 나의 선택으로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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