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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믿 Nov 27. 2023

찢고 싶다, 간호사 면허증을

나는 죄인이다. 

1달 만에 병원을 그만두고, 엄마에게 뭘 할지를 설명한 적이 있다. 웹소설을 써보고, 어느 정도 비축분을 쌓아 놓고 병원을 다시 가든지 하겠다고. 그런데 엄마는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표정을 보고 결심했다. 앞으로 뭘 할지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기로.  내치지 못한 소고깃국 (brunch.co.kr)


그래서 당장에 재택근무를 하게 되고, 계약서를 쓰고 나서도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눈에 선했으니까. 하지만 업무에 필요할 듯해서 노트북을 구입했다. 커다란 택배 박스를 보고 얼버무릴 수도 없어, 일을 구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 말이 나왔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거 알지?


일을 시작한 지 이틀차에 벌써 그런 소리를 들으니 화가 났나 보다. 내가 하는 일이 헛짓거리라고, 그저 방황일 뿐이라고. 그렇게 여긴다고 판단했다. 감정이 일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간호사 면허증은 없어도 된다. 벼랑 끝에 몰리지 않는 이상 병원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노크가 들려왔다. 얘기 좀 하자는 요청에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말을 왜 그렇게 하냐고, 부모의 마음도 알아달라고. 그렇게 서두를 떼었다. 요지는 걱정한다. 자신이 이렇게 살았고, 자식도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런 얘기였다. 그래 걱정하는 것 알겠다. 다만 아직 내 머리가 뜨거웠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런 대답이 입에서 계속 튀어나왔다. 걱정으로 포장하며 내가 병원으로 가기를 바라는 게 아닌가. 그런 의향을 내비치자, ‘지금 당장은’이라고 표현이 계속되었다. 훗날, 병원에서 일하는 나의 이미지가 보였다. 


분명 이것저것 해보다가 병원에서 경력 쌓는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냐고 했다. 나는 거짓말이라고 했다. 그냥 그만두겠다는 말만 해도 울기 시작하는데, 내가 어떻게 면전에다가 병원에 다시는 가기 싫다고 얘기할 수 있었겠냐고. 지금 그때로 돌아가서 내가 병원을 안 가겠다고 하면 뭐라고 말할 거냐고 물었다.


그때와 똑같았다. "뭐 해 먹고 살 건데."

나는 대답했다. "사지가 멀쩡하면 뭐라도 해 먹고 산다고."


눈물도 좀 쏟고, 서로에게 서운했던 점도 나누고. 하지만 얘기는 평행선을 달렸다. 표현을 거칠었을지언정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진심이다. 좋은 삶의 기준이 달랐다. 부모님의 행복과 나의 행복. 불효지만 나의 행복을 택했다.


제발 좀, 뭘 하지도 않았는데 좀 그냥 믿어주면 안 되냐고 호소했다. 왜 못 믿냐고, 내 사지 간수는 어떻게든 하겠다고. 믿는다는 대답을 받았지만, 뒤에 사족이 붙었다. 완전히 믿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 결국 온전한 믿음은 자신으로부터 오는 수밖에 없구나.


그런 얘기를 끝내고 나니 탈력감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잠에 들려고 침대에 누웠건만 심장이 두근거려 바로 잠에 들 수 없었다.


아마 평생이고 잊히지 않을 표현이다. 대화 속에 엄마로부터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한 때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이번에 엄마한테도 들었으니 이제 자타공인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본인이 인정하는 것과 타인으로부터 듣는 건 달랐다. 


침울함은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고통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쇼펜하우어가 떠올랐다. 인간의 삶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고통은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 그 염세주의자는 욕망을 버린 종교인이 되거나, 음악과 같은 예술로 고통을 잠시 잊으라고 말한다.


요건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엄마에게 좋은 아들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나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나는 좋은 아들이고 싶다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겠다. 엄마는 악인이 아니기에. 오히려 헌신적인 사람이었기에.


결국 버리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켜야 한다. 좋은 아들이 되어야 한다. 좋은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병원을 가거나,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돈을 벌어들이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병원을 가기는 싫다. 후자를 성취해야만 한다. 그러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죄책감을, 고통을 느끼는 수밖에 없다.


나는 죄인이다. 간호사 면허증을 찢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아들이다. 다만 지금의 얘기일 뿐이다. 지금, 과정 속에 있다. 훗날에는 속죄하고, 나만이 인정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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