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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믿 Oct 18. 2023

소똥

보다 구수한 거름


병원을 그만두고 일주일 즈음. 끝없는 자기 의심과 믿음. 이를 지켜보며 잠에서 헤매고 있을 무렵, 소고기를 먹으러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귀찮았지만 소고기는 강제로 내 몸을 일으켰다.


근처에 저렴한 가게를 갈 줄 알았다. 그러나 차 타고 30분 이상 걸리는 농장으로 향했다. 좋은 고기를 먹이고 싶었단다. 최근 별로 사랑스럽지 않은 아들이었을 텐데. 의아스러웠지만 준다는 거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갈수록 옅어지는 차량과 건물들, 짙어지는 황과 녹빛들. 여유로운 길 위에서 핸들을 좌우로 흔들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한산했다. 엄마가 추천한 식당인 데다가, 주말 점심이라 꽤나 혼잡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2~3팀 정도밖에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정숙한 분위기가 선호하니까. 맛도 좋은데 조용하기까지 하다면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그런 기대감을 안고서 정육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옮겼는데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선선한 가늘 하늘 아래서 고양이 2마리가 식빵을 굽고 있었다.

고양이들


목에 빨간 띠를 두르고 있는 걸 보면 농장에서 키우는 고양이인 듯했다. 귀여운 모습에 잠시 쪼그려 앉아 눈을 마주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 위로 올라왔다. 생각보다 단단한 발 4개가 위태위태하게 균형을 잡더니 꼬리로 팔을 간질였다. 이내 몸을 돌려서는 내 겨드랑이 사이에 뒤통수를 끼웠다. 이대로 한동안 체온을 나누고 싶었지만 고기를 고르라는 채근에 무릎을 살짝 흔들어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고르라지만 뭘 알겠는가. 대충 등심 한 팩을 들고 식당으로 갔다.



숯불이 있으면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간다. 고기의 질이 떨어져도 숯이 보완해 준다. 그런데 고기의 질까지 좋다면 참을 수 없어진다. 금방 갈색으로 물드는 고기를 집어 굵은소금에 한 번 찍는다. 너무 많이 묻었다면 털어준 뒤에 입으로 집어넣는다. 주륵, 기름인지 육즙인지 모를 액체가 혀 전체를 타고 흐른다. 천천히 하악을 움직이다 보면 몇 번 씹지 않았음에도 위에 도달해 있다. 급하게 먹기엔 아깝기에 속도를 조절하며 불판에 올린다. 슬슬 배가 불러오면 밥과 된장으로 마무리한다.

축사의 소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특히 된장찌개가 입에 들러붙었다. 5000원 치를 포장해 왔을 정도로. 여운을 느끼다 엉덩이를 들었다. 바로 주차장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앞서 말했듯 농장 안에 위치한 식당이었다. 소화도 시킬 겸 농장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축사이기에 그리 정겹지만은 않은 정경, 하지만 순박해 보이는 소들. 시각과 청각.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코의 점막이 따가워졌다. 집중해서 맡자 순간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냄새만 맡고 토를 하는 게 실제로 가능한가 싶었는데, 비위가 약한 사람이면 가능하겠다 싶었다.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강렬한 후각 자극이었다. 바로 발길을 돌려 주차장으로 왔다.


마무리가 미묘했지만 마음이 동했던 식사였다. 그렇게 차를 타고 구부러진 길을 따라 핸들을 열심히 하지만 느긋하게 돌렸다. 창을 살짝 내리고 달리다 보니 무언가가 또 코를 자극했다. 거름 냄새였다. 평소였다면 질색하며 창을 바로 올렸겠지만, 축사에서 풍겨오는 소똥냄새와 비교하면 구수하게 느껴졌다. 참으로 그렇다며 웃었다.


상대적이다. 떼어 놓고 보면 악취였던 거름 냄새도 소똥 냄새에 비하니 구수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호기롭게 외쳤지만 이전 글에도 언급했듯 글로 당장에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다. 빠른 시일 내에 요양병원으로 갈 확률이 높다. 허나 요양병원도 두려웠다. 그만두었던 병원에서의 기억이 끔찍했기에,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 와중. 이상하게도 거름 냄새를 맡으니 안심되었다. 상대적으로 낫지 않을까 싶어서. 삼차병원 정도로 괴로울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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