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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앤 Feb 10. 2020

외롭고 힘겨운 엄마표 초등육아

학원 싫어하는 아이를 둔, 내 자식 못가르치는 엄마의 고백

우리 두 딸은 학원을 안 다닌다. 흔히 말하는 엄마표 교육을 하고 있다. 주변에 육아서 하나쯤 거뜬히 내놓은 넘사벽 엄마표와는 사실 거리가 멀다. 그냥 엄마표다. 특별히 가르치는 것도 없고 아이들의 자발적인 의지를 허용한 내려놓음에 가깝다. 학원 대신 집에서 책읽고 싶을 때 책 읽게 책은 많이 있다. 때때로 책을 안 읽으면 만화책이라도 실컷 읽으라고 그저 열심히 책장을 채워주고 있다. 다만 기초가 필요한 영어 수학은 아주  최소한의 양을 하루 할일(숙제)로 정해서 하고 있다. 


나는 교육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가르치는 데에 특별한 소질이 없을 뿐더러 성격도 모질지 못하다. 대학교 1학년 때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딱 한번 해봤는데, 사실 아이와의 힘겨루기가 힘들어서 바로 그만두었다. 과외선생님이 올 때 문걸어잠그고 자고 있는 대단한 아이이긴 했다. 그리고 나 역시 가르치는데 흥미도 자신도 없었기에 그만두었다. 


주변에 학원을 안다니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 보니 가끔은 다른 엄마들로부터 이질적인 시선과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고, 아이를 방치하는 것 같아서 내심 걱정스럽기도 했다. 불안감은 감추고 아이 스스로 원할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중이다. 


어릴 때의 나는 밖에 나가 놀기 바빴던 것 같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늘 바쁘셨고, 학습지는 잔뜩 밀렸었다. 성적에는 민감하셨지만 딱히 집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나 습관을 만드는데 신경써 주진 않으셨다. 열심히 사신 부모님을 원망하는 건 아니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하고 싶어 나름 고군분투 했었는데,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외나 학원으로 지원해주며 공부에 신경써 주는 친구들을 내심 부러워했었다. 


나의 엄마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초등시기까지는 책이 전부라기에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책은 많이 읽어주려 했다. 그저 많이 읽어주면 될 줄 알았고, 책을 많이 읽는 아이로 키우고자 노력했다. 책을 잘 읽는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게 오히려 힘든일이라고 해서 책육아를 한답시고 매달 책장을 채워갔다. 덕분인지 유치원에 갈 무렵, 주변 아이들 한글 학습지를 하고 있을 때 우리 딸은 책을 혼자 줄줄 읽었고 영어를 듣고 이해하고 말하기를 시작했다. 또 인성은 어떠한가. 유치원 시절 두 딸아이는 사이가 각별해 선생님의 칭찬을 받으며 엄마의 어깨뽕을 높이 세워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 옛날이여. 그때 만해도 내가 아이를 잘 키우는 줄 알았다. 초등학생이 되고 학원을 잠시 보냈다 관두기도 하고, 문제집으로 아이를 잡았다가 말았다가 나의 교육관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잘 읽던 책과도 조금 멀어졌다. 불안했다. 아이는 학원 다니는 아이들이 불쌍하다며 학원을 거부했다. 그리고 나 역시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주변에 선행 학습을 하는 아이들을 보며 비교하지 않으려 귀를 닫고 엄마들과의 모임도 끊은 채 마음을 비웠다.

내 뜻대로 아닌 네 뜻대로 키운다는 건 현실적으로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구나. 특히 엄마의 욕심이라는 가장 큰 왜곡된 짐을.


첫째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영어 학원은 한번 도 다녀본 적이 없다. 학교공부도 잘 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학원 안다니는 걸 부러워하기도 하고 자존감 하나는 높은 아이로 자랐다. 중학교 가서 어찌 될지 솔직히 모르겠지만 아이의 욕심을 믿어본다.


다소 예민한 첫째와 지고는 못사는 둘째, 수시로 티격태격하는 십 대의 두 딸을 온전히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럴때마다 나는 80점짜리 엄마라고 되내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집안 일 하는 것도 밥차리는 일도 청소며 빨래까지 온전히 살림은 내몫이지만 그 안에서 시간을 쪼개 일하는 나의 애씀을 사랑한다. 특별히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면서 사부작 사부작 내 일을 찾아가고 있다. 


또 아이들은 내 소유물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존중하며 키우려고 애쓰는 중이다. 내게 눈을 똑바로 뜨고 자기 주장을 할 때면 깊은 빡침과 함께 뚜껑이 열리는 순간도 있지만, 정말 가끔 그런다. 부모님께 반항하지 못했던 어린시절의 나와 다른 모습이 오히려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때때로 아이와의 기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아 억압하기도 했다. 결국엔 나도 아이도 갈기갈기 찢긴 마음에 서로가 더 힘들다는 걸 깨달을 뿐이지만. 그래도 엄마 말 잘 듣는 착한아이로 자라서 나중에 뒤통수를 맞는 것 보다는 이른 사춘기가 나으리라.


마음은 늘 배려 깊은 엄마이고 싶지만, 사실 오늘도 숙제를 미루고 뺀질거리는 딸과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말았다. 문을 쾅 닫고 들어간 딸은 나의 잔소리에 기분이 상했지만, 어느새 숙제를 다 끝내고 나왔다. 씩씩대더니 배가 고팠는지 냉장고 문을 계속 열어댄다. 뭐가 먹고 싶냐 물어보니 자몽주스란다. 얼른 자몽을 깎아서 믹서기에 갈아줬다. 요구르트를 타줬더니 맛이 딱 취향저격이라며, 맛있게 먹으니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쉽게 마음이 풀어지나보다. 아이든 어른이든.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아이와의 싸움은 칼로 물베기가 됐다. 


이제 숙제도 다 했겠다 늦게까지 또 놀려고 할 텐데, 아이들이 놀아 달라 할까 무서워 컴퓨터 앞에 앉아 바쁜 척을 했더니 갑자기 사이 좋은 자매가 됐다. 폭풍이 지나간 후에는 고요함도 잠시 온다. 둘을 낳아 힘들때도 있지만 이럴땐 참 다행이지 싶다. 자몽 주스 효과인가. 둘이 깔깔 대며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이렇게 놀면...취침시간은 12시가 되겠구나.


엄마주도가 아닌 자기주도 학습이라는게 사실 초등학생에게 가능할 지 모르겠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엄마표도 엄마표 나름이겠지. 내 수준은 엄마표 과외가 아니라 아이표 학습이 될 때까지 옆에서 약간의 도움을 주는, 일정체크 혹은 스케줄관리라 할 수 있는 수준인데. 그나마 스케줄이라고 할 것도 없다. 하루 30분정도의 숙제를 다 했는지 확인만 하는 정도다. 그런데 이게 뭐가 힘드냐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아이가 원할때까지 충분히 놀 시간을 주고 기다려주자 생각하지만, 마냥 성과도 없이 기다린다는 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원치 않아도 쏟아지는 학원 정보와 다른아이들과의 비교를 내려놓고 조바심을 기꺼이 내려 놓기.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것 뿐이다.


부모로서의 욕심을 내려놓으니 점점 소리 지를 일도, 아이들과 말다툴 일도 줄어들고 있다. 생각해보니 요즘 집이 어색할 만큼 조용해졌다. 각자 혼자 놀기 바빠서이기도 하지만. 


가늘고 긴, 다소 게으른 엄마표에도 목표는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는 것. 아이가 공부를 하고자 할 때 기초가 없어 힘겹지 않을 정도로 최소한의 기본 베이스를 유지하는 것. 나의 엄마표 교육의 목표는 이정도다. 그리고 엄마표 교육의 가장 핵심은 아이의 성과가 아닌 관계라는 것. 아이를 몰아세우기 보다는 아이들과 즐겁게 소통하는 관계. 이 마저도 과연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때때로 의문스럽지만. 


그래도 아이가 책을 취미로 삼고 있다는 것과 학교에서 만큼은 뒤쳐짐 없이 잘 해주어 참 고맙다. 아이는 친구들이 학원 안 다니는 것을 엄청 부러워한다며 행복감도 느낀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건 엄마인 나도 모르겠다. 1등이 목표는 아니지만, 공부로 인해 진로에 장애가 되거나 자존감은 상하지 않을 정도로는 잘 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있다. 공부는 정서지능으로 하는 거라는데,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정서적 안정감이라도 가득 채워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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