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보다는 명분이 중요한 이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전체 인구의 약 30~35% 정도인 보수 성향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됐다. 헌재 선고 당일까지도 '5대 3' 기각설이 널리 퍼졌으나, 의외의 결과는 없었다. '8대 0' 만장일치.
헌재의 결정문을 읽어보면 사실 파면 이유는 명확했다. 계엄 사유가 안 되는 이유로 계엄을 했다는 것.
아무리 윤석열 전 대통령을 이해해보려고 해도 '부정선거' 의혹에 심취한 대통령은 너무나 낯설고 이상했다. 심지어 부정선거 의혹을 밝히는 것이 계엄의 중요한 이유라면서도, 뚜렷한 증거는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
망상적인 의혹으로 계엄까지 한 대통령에 대해 헌재가 파면이 아닌 업무 복귀를 결정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한쪽인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과 조만간 형사 처벌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내란 동조세력'이라는 윤 전 대통령 지지층을 괴멸시키겠다고 나서고 있다.
과거 우리 정치에선 한 정치세력의 수장이 권력을 잃거나 감옥에 가면, 그를 지지하는 국민도 국민인 만큼 국가적 화합 차원에서 다음으로 나가려고 노력하곤 했다.
이는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행해진 일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두환 사면에 찬성한 일을 봐도 그러하다.
전두환이 아무리 극악 무도한 독재자였다해도, 당시 국민 중 30~35%는 그에게 호의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한 파면이 이뤄졌는데도, 그 세력의 뿌리를 뽑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신들이 선이라고 믿는 명분을 달성하기 위해선 그 반대편에 서있는 국민은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다.
지금의 민주당 등 야권을 보면 조선시대 사림파가 떠오른다. 훈구파를 몰아내고 권력을 잡을 당시에는 개혁세력이었으나, 명분에 집착해 조선을 약화시키고 결국 멸망으로 이끈 세력. 일각에선 합리성을 가진 훈구파의 몰락과 명분을 강조하는 사람의 득세가 조선의 국력 약화를 가져왔다는 시각도 있다.
아무튼 민주당 등 야당이 국민 통합보다는 명분에 집착하는 이유는 역사적 결과의 교훈 때문인듯하다.
국민 통합이란 이유로 당대의 반대 편을 설득하기 위해 화합을 내세운 것이, 결과적으로 세월이 지나 그 반대편 국민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난 시점엔 '이상한 합의'로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전두환 사면 같은 것들이다. 당시엔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결과적으론 사면하지 않는 것이 대의명분에 더 맞는 결정이었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한 것이다.
친일파 단죄 역시, 해방 직후 정국에선 국내에 살던 한국인 중엔 친일파와 친일파가 아닌 사람을 구분해 내기 어려웠다. 그리고 35년 간의 일제 식민지 시기 부역을 했거나 동조했던 일들은 당시 국민들에겐 사실상 입 밖으로 꺼내는 게 금기시되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1980년대에 개그 프로에서 시골을 배경으로 한 코너에선 "형님 아버지가 나까무라로 이름 바꾸고 왜정 때 뭘 했지"하는 식의 대사가 나오곤 하는데. 그 말을 들은 당사자는 당황하며 입을 막는 장면이 나오곤 했다.
일제 강점기 직후 한반도 내 분위기는 그러했고, 그냥 묻고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그런 분위기가 화합의 명분으로 더 이상 추궁하지 않은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세상을 떠나고 나니 '친일 청산'이란 명분이 더 강하게 남아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 당사자들이 사라지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옳고 그름의 판단 뿐인 것이다.
이런 역사적 경험 탓에 더 이상 우리나라에선 특히 민주당 등 야당 계열에선 '국민적 통합을 위한 화해와 용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다. 도덕적 명분을 쥐고 있는 경우엔 더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