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과 누군가의 도움의 가치
전업자녀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은 '나쁘지 않은데'였다.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일이 집안일인데 그걸 내가 늙어서 내 자식들이 전업으로 대신해 준다면 그 또한 공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나이들 분들을 보면 돈이 재벌급으로 많지 않은 이상 노후에 힘든 일들을 대신해 줄 사람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다못해 병원을 간다거나 집정리를 하거나 물건을 옮기는 등.
우리 부모님은 3층 건물의 3층에 사시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내가 집에 올 때마다 물건을 옮겨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제는 3층까지 올라다니기 힘들다고 건물을 내놓고 아파트 1층으로 이사 가시겠다고 한다.
결혼하면 내 자식 챙기느라 부모님을 챙겨보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주변에 효도하는 분들은 대부분 결혼하지 않은 분들이고, 부모님들도 결혼하라고 성화를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 자녀들에게 의존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물론 자녀가 장성해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잘 사는 것은 모든 부모의 바람이겠지만, 결혼하지 않더라도 같이 살며 내가 늙었을 때 나를 도와준다면 그 또한 고마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러려면 부모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노후보장이 돼 있어야 할 것이다.
매주 토요일마다 집 근처 구립도서관에 딸이 '웹툰' 수업을 들으러 간다. 주로 마느님이 데리고 가지만 내가 데려갈 때도 있다.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12시에 끝나는 수업인데, 수업하는 동안 도서관 3층에 있는 커피숍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갈 때마다 매번 같은 구석자리에 앉는 7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와 50대 정도로 보이는 아들이 있다. 아들분은 몸이 불편해 보이는데 계속 몸을 움직이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래서 그 옆자리는 늘 빈자리로 아무도 앉지 않는다.
할머니는 늘 고단한 듯 자리 2개를 붙여 다리를 올려놓고 선잠을 자곤 한다. 언젠가 별생각 없이 자리를 앉았다가 그 두 분이 앉는 자리 바로 옆자리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그러나 이미 그 두 분이 옆에 앉은 상태.
자리를 옮길까 하다가 그냥 앉아있었는데. 그 할머니가 아들에게 "조용히 있자 이제 좀 편하게 살고 싶다. 조용히 있어"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아들분은 몸의 움직임을 멈추고 책을 펼치더니 1시간 넘게 책에 집중했다. 뭐라고 설명하긴 힘들지만 누군가의 책 읽는 모습이 멋져 보이는 건 오래간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