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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이쭝이 Apr 03. 2024

모두가 키 큰 남자를 원하는 사회

185cm로 40년 넘게 살아보니

합계출산율이 0.7명대인 초저출산 시대에 결혼은 '선택'이란 말도 식상한 표현이 됐을 정도로 비혼이 일반화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주변에는 결혼이나 연애를 하고 싶어 하는 총각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적인 의견 중 하나는 "여자들이 남자 키가 170cm 미만이면 소개팅 자체를 거절한다"는 얘기다.

물론 170cm 미만이라도 우월한 외모와 뛰어난 스펙, 직업, 재산 등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평범한 미혼 남성을 기준으로 키가 작다는 것은 결혼과 연애에 큰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실제 자녀의 키를 크게 하기 위해 1년에 4000만~5000만 원을 주고 성장 주사를 맞게 했다는 분들도 심심찮게 보고 있다.

과거에도 남자는 키가 크면 상대적으로 유리한 면이 있었겠지만, 요즘처럼 남자의 키가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없었던 듯하다.

나는 키가 185cm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키가 작았던 적은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 180cm였고 고등학교 1학년 때 현재 키가 됐다. 중3에서 고1로 넘어가는 시기엔 키가 너무 많이 클까 봐 일부러 우유도 안 마시고, 잠도 일부로 적게 자는 등 키가 안 크는 행동만 골라서 했던 기억도 난다.

1920년대 생인 할아버지가 183cm로 당시 마을에서 가장 크셨다고 하고, 아버지, 삼촌들, 사촌, 6촌까지 전부 봐도 남자 중에 175cm 이하는 한 명도 없다. 대부분이 180cm 전후.

이런 개인적 경험으로 보면 키는 유전자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아들도 초등학생이지만 키가 174cm로 반에서 가장 큰 편이다.

과거에 비해 키가 왜 이렇게 중요하고 민감해졌는지 이유를 살펴보면 평균 신장 자체가 커진 영향이 큰 게 아닌가 싶다. 2021년 병무청 징병검사 자료를 보면 20세 전후의 징병 대상 남성 평균키가 174.1cm다.

내가 징병검사를 받던 20세기말에는 평균 신장이 167cm 정도로 기억되는데 현재는 174.1cm로 7cm 이상 커졌다. 170cm 이하는 전체 30% 정도로 남자 10명 중 7명은 170cm가 넘는 상황인 것이다.

예전엔 160cm대 키라도 평균이거나 평균보다 약간 작은 편이었지만, 지금은 160cm대 키라면 10명 중 7명이 더 큰 수준이란 것이다.

예를 들자면 20세기말 우리나라 평균 연령이 20대 중후반일 때는 30살만 넘어도 어른 취급을 받았다. 또 김광석이 '서른 즈음에'란 노래도 불렀지만, 지금은 평균 연령이 40대 중반이라 30살이면 애 취급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과연 키가 크면 사는데 장점이 많을까?

정우성은 잘생긴 것이 불편한 점이 있냐는 질문에 "전혀 없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런데 키가 크면 불편한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내 답은 "상당히 많았다"이다.

물론 이는 20세기에 초, 중, 고교를 졸업한 내 나이대의 특수성 때문일 수 있다. 현재는 다를 수 있다.

내 경우 늘 키가 컸기 때문에 항상 뒷자리에 앉아야 했고, 뒷자리에 앉는 아이들은 지금 표현으로 '질 안 좋은'아이들이 많았다. 그 애들 때문에 힘든 경험도 많았고, 키가 크다는 이유로 학창 시절엔 시비 거는 애들도 많았다. 나를 꺾으면 자기가 더 강해 보인다는 그런 심리일 듯하다.

선생님들도 키가 크다 보니 늘 무거운 것을 들거나 책상을 옮기거나 힘이 필요한 일은 나를 꼭 시켰다. 또 체벌을 받을 때도 나한테는 봐주는 법이 없었고, 늘 풀스윙으로 때리시곤 했다.

키가 크면 마음도 강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보니, 나에 대해서는 세심한 배려를 한다거나 하는 선생님이나 어른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이는 군대나 직장에서마찬가지였다. 늘 '덩치는 산만한 놈이 뭘 그래'란 말을 많이 들었고, 그 말이 참 듣기 싫었다.

키가 커서 좋은 점은 주로 성인이 되고 군대 제대한 이후에 많아진 듯하다.

일단 아르바이트를 할 때 진상 손님을 거의 만나본 적이 없다. 진상도 사람 봐가면서 부리는 게 맞는 듯하다. 상대가 만만해 보이거나 여자 아르바이트생에겐 진상을 부려도, 내겐 그런 사람이 거의 없었다. 길을 가다 시비를 붙은 경험도 거의 없다.

해외여행 가서도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뭔가 내게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만난 적이 없다.

사람을 만나도 키가 크면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까진 아니어도 나쁘게 작용하는 경우는 없는듯하다.

결론적으로 내가 그다지 잘생기지 않은 외모로도 현재의 아내를 만나 애 낳고 잘 살고 있는 것도 키가 큰 덕분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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