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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이쭝이 Apr 06. 2024

100만 원짜리 와인은 어떤 맛일까

10만 원 이하만 마셔본 와인 애호가(?)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이른바 '나이스한 개XX'라고 불린 하도영이 운전기사에게 선물 받은 100만 원짜리 와인을 마시라고 주는 장면이 있다.

운전기사가 자신은 와인 맛을 모른다고 하니, 하도영은 편의점 가서 1만 원짜리 와인을 사셔 마셔본 뒤에 100만 원짜리를 마시면 차이를 알 것이라고 조언(?)해준다.

그 대사를 들으며 나도 100만 원짜리 와인이 어떤 맛일지 궁금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와인을 마셔본 건 2003년 초겨울이었다. 당시 군대 제대하고 '내 생활비는 내 손으로 벌어야 한다'는 예비역스러운 생각을 갖고 있던 때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신문배달을 하고 곧바로 아침 8시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저녁에는 당시 한창 핫하던 '찜닭집'에서 서빙도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내 손으로 직접 내가 쓸 돈을 번다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던 시절이다.

내가 일하던 편의점은 지금은 사라진 '바이더웨이'였는데 우리 편의점 앞에 LG25(현 GS25)에서 와인 할인 행사를 했다. 당시 와인이 처음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는데 '보졸레누보'가 굉장히 인기를 끌었다.

보졸레 누보는 매년 당해 수확한 햇포도로 단기 숙성해 판매하는 와인으로 지금 생각해 보면 이른바 가성비 와인이었지만, 당시 대학생 입장에선 이름도 그렇고 가격도 3만 원대로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내가 일하던 편의점 사장님 보다 앞에 있던 LG25 사장님과 근무 시간이 겹쳐서 자주 마주치다 보니 상당히 친분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곧 생일이라고 하니 한번 마셔보라며 보졸레 누보를 한병 선물로 주셨다.

그 보졸레 누보를 한병 들고 자쥐방에 돌아왔는데, 나한텐 당연히 와인 오프너도 없었고 와인 잔도 없었다.

코르크 마개를 칼로 쪼개서 빼내려다 부스러기가 와인병 안으로 다 들어가 버려, 집에 있는 거름망으로 와인을 냄비에 옮겨 담아야 했다. 굳이 좋게 생각하면 '디캔팅' 과정이라 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뭔가 망한 기분이 들긴 했다.

냄비에 옮겨 담은 보졸레 누보를 맥주잔에 따라서 마셨는데, '이게 뭔 맛이냐'란 생각을 했던 기억만 난다. 정확히 어떤 맛이었는지 20년도 넘게 지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게 내 첫 와인의 경험이다.

와인을 다시 접하게 된 건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2000년대 말 곳곳에 생겨났던 '와인샵'을 통해서다.

와인샵 중에는 와인을 사면 간단한 안주와 함께 옆 테이블에서 먹을 수 있는 곳들이 많았다. 회사 동기 중 나보다 1살 많은 형이 그런 곳을 좋아해 몇 번 따라가서 마시곤 했다. 그런데 그때도 와인이 무슨 맛인지, 무슨 와인을 마셨는지는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와인을 능동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건 결혼한 이후다.

2013~2014년쯤 집 근처 이마트에 자주 갔는데, 와인 할인행사를 많이 해서 주말마다 한 병씩 사서 마셨다.

당시에 아내와 매번 사던 와인은 단맛이 강한 '모스카토'였다. 그땐 '와인=모스카토'라고 생각할 정도로 단맛이 안나는 와인은 아예 사지 않았다. 모스카토는 도수도 5도 정도라 마셔도 크게 취하지도 않고 기분을 좋게 하는 용도로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다 2015년 여름 어느 날. 내 음주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나는 그날 이전까지 술이 맛있다(모스카토처럼 진짜로 단 맛이 나는 술을 제외하고) 거나, 술을 마시고 싶다고 느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특별한 날이나 주말, 남이 마시자고 해서 마실 뿐이었다.

그런데 그날 토요일 낮이었는데 엄청 날씨가 더워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한 캔 마셨는데, 너무 맛이 있다고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지금 이유를 유추해 보면 그즈음에 다이어트를 세게 하고 있었고, 몸무게를 20kg 정도 감량한 상태였는데 하루 500~600칼로리 정도만 먹다 보니 입맛이 엄청나게 예민해져 있던 것 같다.

그런 상태에서 그날도 점심을 아주 가볍게 먹고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었는데, 맥주밖에 없어서 한 캔 마셨더니 입에 쫙 붙는 느낌을 처음으로 느꼈다.

그날 이후 술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과음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반주로 술을 마시는 수준에 이르게 됐다.

특히 와인은 코로나19 기간에 2년가량 재택을 하면서 거의 매일 1병씩 마셨을 정도다. 그러나 거의 매일 마시다 보니 1만~2만 원대 정도로 싸면서도 너무 '싼 맛'이 안나는 가성비 와인만 마실 수밖에 없었다.

싸다고는 하지만 소주나 맥주에 비해면 1병 가격이 거의 10배 수준.

'1865'는 와인 애호가한테는 흔한 저가 와인이지만, 내겐 나름 특별한 날 사는 고가(?) 와인으로 느껴진다.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도 비행기 좌석에 앉으면 바로 공짜 와인부터 주문하게 됐다. 또 면세점에 가면 10만 원 안팎의 나름 고가(?) 와인을 꼭 1병씩 사 온다.

레드는 '까베르네 쇼비뇽', 화이트는 '샤르도네'를 좋아한다. 입맛이 저렴해서 샤르도네는 마트에서 가장 저렴한 G7 샤르도네를 많이 사 마시는데, 최근 우리 집 옆 이마트 에브리데이엔 G7 중 샤르도네만 안 팔아서 왜 그런지 의문이다.

아무튼 언젠가 월급 외에 투자건, 출판이건, 강연이건, 부수입으로 큰돈을 벌게 되면 꼭 100만 원짜리 와인을 사서 마셔보고 싶다.

개인적 경험으론 3만 원대 1865나 10만 원 정도 하는 면세점에서 산 까베르네 쇼비뇽이나 엄청난 맛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100만 원짜리 와인이 어떤 맛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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