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는 2006년 1월 유럽 배낭여행 때 3박 4일을 머물렀던 곳이다. 20대였던 당시엔 3박 4일이 첫 시작일 뿐 파리에 올 기회가 많을 줄 알았다. 그런 생각 탓에 3박 4일 중 첫 이틀은 여행책자에 나온 파리 명소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열심히 돌아봤다. 그리고 나머지 1박 2일은 밖에 나가지 않은 채 한인 민박집 거실에 설치된 PC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4~5년간은 해외에 갈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2012년 이후 거의 매년 해외 출장 기회가 있었다.
특히 유럽은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 여러 나라와 도시들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 그중에서도 파리만큼은 유독 인연이 닿지 않았다.특히 파리 여행을 계획하게 된 건 아내의 강한 의지가 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결혼 후 30대엔 비용 부담과 아이들이 어린 탓에 해외 가족여행을 떠나기 어려웠다. 비행기 타고 갈 수 있다는 이유로 제주도만 매년 2~3번씩 다녀오면서 해외여행은 늘 다음 기회로 미루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 갈 바에는 동남아"라고 말 하지만, 실제 비용을 따져보면 동남아가 제주도보다는 돈이 더 많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영유아 2명을 데리고 해외에서 유모차 끌고 다닐 자신이 없었다.
사실상 첫 가족 해외여행은 내가 40대에 접어들고 첫째 아이가 초등학생, 둘째가 4~5살 무렵이던 2019년 가을이었다. 베트남 다낭으로 늦은 여름휴가를 떠났던 우리 가족은 패키지여행이었지만 만족스러운 첫 해외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앞으로는 매년 해외여행을 가자고 아내와 함께 굳게 다짐도 했었다.
그러나 이듬해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우리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4년이 지난 2023년에야 일본으로 두 번째 해외 가족여행을 갈 수 있었다. 이후 태국, 홍콩, 마카오 등 동남아 중심으로 여러 번 해외 가족여행을 갔지만, 유럽을 가보고 싶다는 아내의 열망은 더 커져만 갔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는 올 8월 초 뜨거운 한여름 마카오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10월 유럽 여행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다. 이전까지 모든 해외여행에 대한 계획과 실행은 전적으로 내가 맡아왔지만, 이번만큼은 모든 일정과 계획을 아내에게 일임했다.
유럽여행에 대한 첫 구상이 시작됐던 마카오 공항.
아내는 8월 하순부터 유럽여행을 어떤 방식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 해외 가족여행은 대부분 '패키지여행'이었다. 이유는 아이들이 어린 관계로 교통편에 대한 고민이나 식사를 고르는 수고 등을 덜기 위해서였다.
2019년 베트남 다낭, 2023년 일본 오사카 및 교토, 태국 방콕 및 파타야, 2024년 홍콩까지 4번의 해외 가족여행이 모두 패키지여행이었다.
하지만 모든 패키지여행이 그렇듯 빡빡한 일정과 부실한 식사 등으로 인해 상당 부분 만족감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이로 인해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오면 늘 아내는 독감에 걸리거나 몸살 때문에 일주일 넘게 몸이 정상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하곤 했다.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패키지 아니라 자유여행으로 떠난 곳이 마카오였다. 올 5월 홍콩 여행을 갔다 온 이후로 이쪽 지역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히 붙은 상태였고, 마카오는 좁은 지역에 호텔 셔틀버스도 잘 돼 있어 자유여행하는데 큰 불편함도 없었다. 아이들도 이제 초등학생이라 예전과 달리 충분히 대중교통이나 셔틀버스를 갈아타는데 무리가 없었다.
마카오 자유여행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아내와 나는 유럽을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을 가기로 일단 결정을 했다. 그러나 자유여행으로 결정하고 나서는 어느 나라와 도시를 며칠 일정으로 갈 것인가를 정하는데 또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막상 자유여행을 가기로 했지만,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런던-파리-로마' 정도의 일정만 잡아도 최소한 3번은 도시를 옮겨 다녀야 하고, 교통비도 런던에서 파리가는 기차비용만 4인 가족 기준 100만원이 훌쩍 넘었다. 또 이미 런던을 4번이나 가본 내 입장에선 영국을 가고 싶다는 의지도 약했다. 로마도 분명 유럽에서 1,2위를 다투는 관광지이지만 나도 아내도 큰 로망은 없는 도시였다.
결국 우리는 한 도시를 일주일 정도 머물며 충분히 즐기고 느껴보자는 쪽으로 결론지었다. 그리고 여행할 도시는 만장일치 '파리'였다.
그림을 좋아하는 아내가 마음껏 세계적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고, 나 또한 18년 전 대학생 때 이후 한 번도 가보지 못해 가보고 싶은 도시였다. 또 '비포선셋'과 '미드나잇 인 파리' 등 좋아하는 영화의 무대가 됐던 도시이고, 올해 올림픽이 열렸던 곳이라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나와 아내는 가끔 주말에 파리에서 에펠탑 보며 크루아상과 커피를 마시는 파리여행 브이로그 영상을 거실 TV에 켜놓고 와인을 마시곤 했었다. 그만큼 파리는 우리 부부에겐 꼭 가보고 싶은 도시였다.
파리로 장소가 결정되고 나니, 이후엔 비행기 티켓을 숙소를 정해야 했다. 그리고 여행의 시기와 날짜, 기간 등도 조율해야 했다.
9월 한 달간 아내는 매일 밤 숙소를 비교하며 내게 "어디가 좋아"라고 묻기를 반복했고, 고심 끝에 마레지구에 있는 테라스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와 퐁네프 다리 근처 가성비 좋은 4성급 아파트형 호텔로 예약을 마쳤다.
항공편은 예약 시점에 상대적으로 저렴했고 국적기인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9월 말, 2024년 10월 23~31일 7박 9일간의 파리 여행을 떠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쳤다.
아내는 엑셀파일로 날짜별 시간대별로 정리한 빼곡한 여행 일정 정리를 마쳤고, 나는 그 일정표를 보며 쉽지 않은 여행이 될 것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