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희망퇴직과 힐링 여행
30대 초반에 결혼해 40대 중반이 될 때까지 계속 맞벌이를 해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2022년 2년가량 재택근무를 하던 시기를 제외하면 매일 아침 나와 아내는 회사 출근, 아이들은 학교 등교를 하느라 전쟁터 같은 풍경이 반복됐다.
영원히 계속될 줄 알았던 이런 아침 풍경이 멈춘 건 2024년 4월 어느 날이다. 아내는 올 3월까지도 예상하지 못했던 '희망퇴직'을 갑자기 하게 됐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늘 스트레스로 힘들어했던 아내에게 입버릇처럼 "언제든 힘들면 그만둬"라고 말해왔지만, 막상 예상치 못한 퇴사를 하게 되니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했다.
다행히 아내는 자신이 원했던 일들을 찾아나갔고, 창업에 필요한 배움과 준비를 하며 퇴직의 충격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내가 회사를 떠난 아내에게 원하는 건 하나였다. 올 한 해는 아내가 마음의 평온을 찾고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일. 그래서 파리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처음엔 아내 혼자 유럽 여행을 가라고 했다. 4인 가족이 함께 유럽을 갔을 때 드는 엄청난 비용,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도 1주일 이상 빠져야 하는 문제 등을 고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힐링과 행복은 가족과 함께할 때 가능하다는데 나와 아내의 생각이 일치했고,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가 긴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결국 아내는 15년간 열심히 회사를 다녀 받은 퇴직금의 일부로 파리 여행을 계획하게 됐다. 얼마나 힘들게 일했고 그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기에 아내가 원하는 데로 여행 계획을 짜게 됐다. 이번 여행은 가족의 행복, 특히 아내의 힐링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아내는 9월 한 달을 파리에서 지낼 숙소를 알아보고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7박 9일간 일정을 날짜, 시간별로 촘촘히 짜며 보냈다. 특히 아내는 테라스가 있는 숙소에서 꼭 지내보고 싶어 했다.
10월 23일 밤, 파리 마레지구에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해 꿈꾸던 테라스를 보면서 아내는 매우 만족했다. 디즈니랜드로 가기 위해 사실상 첫날인 24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숙소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진짜 파리에 왔구나'란 생각이 들게 했다.
아내는 여행 전부터 꿈꿔오던 '아침 크루아상'을 사기 위해 숙소 근처 빵집을 아침 일찍 찾아 크루아상과 뱅쇼콜라를 사 왔다. 또 전날 밤 마트에서 사 온 샐러드와 올리브에 커피 등을 테라스에 있는 테이블에 차려놓았다.
우리 가족은 아내가 정성스럽게 차린 아침을 먹고, 파리에서 첫 일정인 디즈니랜드로 향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파리의 10월 가을 날씨는 너무나 화창했다. 숙소를 나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파란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날 아침 우리 가족의 생애 첫 디즈니랜드는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부부까지 한껏 기대에 부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