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디즈니랜드에서 밤늦게 숙소에 도착해 새벽 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지만 둘째 날 일정을 위해 우리 가족은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이날은 아침부터 가족사진 촬영을 예약해 약속한 장소로 오전 8시 30분까지 도착해야 했다.
나는 대학생 때 배낭여행으로 왔던 파리에선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못했다. 이유는 비행기를 갈아탔던 뉴욕 JFK 공항에서 디지털카메라를 분실한 탓이다. 정확히 말하면 분실했다기보다는 내 바보 같은 행동으로 카메라가 사라졌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당시 비행기를 타본 경험이 몇 번 되지 않았던 나는 기내에 가지고 타도 되는 백팩까지 수화물로 붙였는데, 그때 카메라를 가방 안에 넣지 않고 밖에 고리로 걸어두는 실수를 했다. 수화물을 분류하고 옮기는 과정에서 고리에 걸어둔 카메라는 어디선가 사라졌고, 환승 시간이 임박해 찾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국 14박 15일의 유럽 배낭여행 내내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못했다. 다행히 파리 일정에선 같은 민박집에서 만난 경남 창원에 산다던 중학교 교사 누나 2명과 함께 오르세 미술관을 갔었는데, 그때 그 누나들이 내 사진을 찍어줬다.
문제는 그때 캐나다 연수 중에 온 여행이라 한국 휴대전화 번호가 없었고,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고 거기로 내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그 누나들의 전화번호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이메일로 사진이 오지 않았고, 그 사진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누나들의 메모리카드에 보관돼 있다 삭제됐을 것이다.
그리고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파리에서 가족사진을 찍게 됐다.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사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는 영화 '미드나잇인파리'에 나왔던 곳이었다.(사실 이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고 사진을 찍을 당시엔 몰랐다)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곳에서부터 에펠탑을 바라보며 장소를 옮겨가며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다. 처음 해보는 포즈도 취해보고 아내와 아이들과 손도 잡고 걷고 웃기도 하며 즐겁게 사진 촬영을 마쳤다.
사진 촬영을 해준 분은 1992년생으로 파리에서 영화 공부를 하다가 정착한 한국 청년이었다. 한때 영화감독을 꿈꿨지만 옛 추억이 돼 버린 나는 그분과 걸으며 꽤 많은 얘기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 장소 바로 옆에는 아내가 꼭 가고 싶다던 식당이 마침 자리하고 있었다.
'LINETTE'라는 프랑스요리를 파는 곳으로 야외 테이블이 놓여있는 아담한 식당이었다. 그곳에서 아내는 파리에서 반드시 먹고 싶다던 양파수프와 달팽이 요리인 에스까르고, 오리 콩피, 와인 등을 시켰다.
달팽이 요리는 한국에서 속살을 까서 양념과 섞어놓은 형태는 먹어본 적이 있지만, 달팽이 껍데기까지 그대로 내놓는 에스까르고는 처음이었다. 갈릭버터를 넣고 오븐에 조리한 에스까르고는 속살을 빼내서 빵에 올려먹으니 꽤 고소하고 맛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은 파리 여행에서 에스까르고가 가장 맛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양파수프는 평소 먹는 양파수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맛이었고, 오리 콩피도 오리 다리를 오븐에 구운 맛 그대로였다. 이른 점심을 먹은 우리 가족은 본격적으로 에펠탑과 개선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