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에서 사라진 아들

파리 화장실 스트레스와 강행군의 피로

by 쭝이쭝이

여행 일정 둘째 날은 전날 디즈니랜드에서 돌아와 새벽에 잠들었지만 불과 4~5시간 자고 일어나 다시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진 강행군이었다. 그날 하루 걸음수가 2만 5000보를 넘겼다.

에펠탑과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를 거쳐 오후 5시쯤 루브르박물관에 도착했다. 저녁 6시부터 루브르박물관 투어를 신청해, 푸드코트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었다.

파리의 살인적 물가 때문에 4명이서 15만 원을 점심에 쓰고도 배가 고픈 상태였고, 루브르 푸드코트에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입맛에 맞는 태국 음식을 사 먹었다.

파리에서 가장 불편한 점을 꼽으라면 무료 화장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가장 불편한 점으로 거리에 '휴지통'이 없다는 점을 늘 거론하는데, 파리에 가보니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파리는 어디에 가나 휴지통이 많아서 쓰레기를 버리는 데는 아주 편리했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주 흔한 화장실이 정말 찾기 힘들었다. 그나마도 유료이고 지하철역에도 화장실이 없었다. 화장실은 기본적으로 돈을 내고 들어간 곳에서만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손님을 배려하는 문화라 화장실을 많이 설치했지만, 파리 사람들 입장에선 집에도 화장실이 있고 직장이나 학교에도 화장실이 있고,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도 있는데 굳이 그 외 장소에 무료 화장실을 돈들여 지을 이유가 없을듯하다. 또 파리는 건물들이 워낙 오래돼 화장실을 새로 짓는데 돈이 많이 들고 공간도 찾기 힘들다고 한다.

아무튼 화장실을 꽤 자주 가는 아들은 해외여행 갈 때마다 화장실 문제로 나를 힘들게 했다. 어릴 때는 그 정도가 더 심해서 장거리 투어버스 안에서 화장실을 가겠다고 해서 도로 한복판에서 해결하느라 다른 단체 관광객들에게 미안했던 경험도 있다.

루브르에서도 푸드코드에서 식사를 하고 화장실을 가려고 하니 2유로를 내야 하는 유료 화장실만 있었다. 막상 들어가 보니 돈을 내고 가는 화장실인데 내부 시설은 지저분하고 청소도 돼 있지 않다. 변기는 깨져있었다. 세계적인 박물관 안에 있는 유료 화장실이 이렇다니 참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투어를 하기 위한 장소로 이동하는데, 내부에서 외부로 나오는 길이 상당히 멀고 복잡한 구조였다. 중심 광장으로 나와서 단체 투어 입구 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아들이 또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짐작으로는 분명 돈을 내고 들어가는 박물관 내부에는 화장실이 있을 듯했다.(실제로 들어가자마자 가이드가 깨끗한 화장실을 안내해줬다)

하지만 아들은 꼭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혹시 다른 무료 화장실이 있나 찾아보려고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 내부로 들어가서 열심히 살펴봤다. 그리고 2유로가 아니라 1유로인 사람이 거의 없는 화장실을 찾아냈다.

문제는 그 화장실은 카드 결제가 안되고 오직 현금만 받았다. 결국 카드밖에 없어서 아까 2유로를 냈던 화장실을 다시 가야 하는 상황. 그런데 분명 뒤에 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들 뒤에 따라오던 아내와 딸도 아들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순간 눈 앞이 깜깜해지고 소위 '멘붕'이 왔다. 이 넓은 루브르 안에서 영어도 못하는 아들을 어디서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 해외라 아들이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키즈폰)는 수신과 착신이 모두 차단돼 있었다.

미친 사람처럼 아들을 찾기 위해 30분가량을 아들 이름을 부르며 뛰어다녔다. 결국 아들을 찾긴 했지만 안도감보다는 화가 치밀어 올라 모진 말을 쏟아내고 말았다.

울먹이는 아들을 데리고 우여곡절 끝에 야간 투어를 참여했는데, 3시간이 넘게 이어지는 투어 동안 다리가 아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가족들의 모든 짐을 내 백팩에 보관했기 때문에 하루종일 메고 있느라 어깨가 부서질거 같았다.

대학생 시절 배낭여행으로 파리에 왔을 때도 루브르에선 모나리자와 비너스상 정도만 보고 1시간 만에 나갔던 기억이 있다. 이번엔 아이들까지 다리가 아프다고 난리였고, 가이드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아들이 또 사라져 버렸다. 다리가 아파서 아무 의자에나 앉아있다가 투어를 놓쳐버린 것이다.

루브르에서 3시간 넘는 투어는 다리 아픔과 졸음을 견디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힘겨운 시간이었다. 사실 미술품이나 전시품에 큰 관심도 없었고, 아이들은 더욱 관심이 없었던 터라 빨리 투어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모나리자도 18년 만에 다시 봤지만 사실 큰 감흥은 없었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가까이 가서 보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3시간이 넘는 루브르 투어를 마치고 우리 가족은 지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아내는 파리 여행의 가장 큰 목표가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세계적인 '명화' 감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힐링', '파리지앵처럼 살아보기' 같은 여행을 하고 싶었다. 이 지점에서 서로 간에 갈등이 폭발한 날이 바로 루브르 야간 투어를 했던 둘째 날이다.

다음날인 셋째 날에도 아침부터 오르세 미술관 방문이 예정돼 있었는데, 루브르에서 너무 진을 빼고 힘들었던 터라 "내일은 나와 아이들은 호텔에서 쉴 테니 당신 혼자 오르세에 다녀와라"라고 얘기하고 말았다.

루브르 야간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밤 12시, 씻고 잠자리에 드니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도저히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오르세 미술관에 갈 자신도 힘도 없었다.

잠자리에서도 다시 한번 "나는 절대 오르세에 안 갈 거다. 당신 혼자 가서 보고 싶은 만큼 보고 와라"라고 얘기를 하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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