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까지 왔는데 피곤이 대수냐
루브르 야간 투어를 마치고 한밤중에 숙소로 돌아오니 정말 온몸에 기운이 다 빠진 상태였다.
파리에 도착한 이후 2박 3일간 매일 새벽 6시 기상, 밤 1시 취침, 하루 2만 보 이상의 강행군을 하니 발목이 아프고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도 오르세 미술관을 가는 일정이 잡혀있었다.
"정말 내일은 못 가겠어. 나랑 애들은 호텔에 있을 테니 자기 혼자 오르세 갔다 와."
아내는 아이들에게 오르세에 가서 세계적인 명화들도 보여주고 싶고,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내가 강하게 거부를 하니 마지못해 혼자 가겠다고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시차 적응 탓인지 피곤에 절어 잠에 들었는데도 새벽 5시 30분에 눈이 떠지고 말았다. 다시 잠을 청해봤지만 정신은 더욱 또렷해지기만 했다.
침대에 누워 어두운 방안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내에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가족과 함께 파리 여행을 혼자 계획하며 자신의 퇴직금으로 떠나온 여행인데, 남편이란 사람이 피곤하다고 혼자 가라고 하니 얼마나 서운했을까 싶었다.
'그래 나만 마음 고쳐먹으면 아내가 행복할 수 있는데...'
마침 얼마 뒤 잠에서 깬 아내에게 "그래 가자 오르세"라고 말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천근만근이던 몸도 신기하게 생각을 바꾸니 다시 일어나 나갈 기운이 생겼다.
숙소를 나와 지하철을 타고 튈르리 정원이 있는 역에 내려 오르세 미술관까지 걸어가는 길은 묘하게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탁 트인 튈르리 정원에서 멀리 보이는 콩코르드 광장의 오벨리스크도 멋진 풍경에 한몫했다.
주말을 맞아 아침부터 튈르리 정원으로 나들이 나온 시민과 관광객들 사이로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그 사이를 걸어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하는 15~20분 지난 이틀간 쌓였던 피로와 나쁜 감정들도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2006년 1월 대학생 때 파리로 배낭여행을 와서 민박집에서 만난 경남 창원에 산다는 누나들과 오르세 미술관을 갔었다. 그 당시 기억나는 장면은 오직 대형시계. 그 시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지만 끝내 받지 못했는데, 18년 뒤 내 가족과 함께 오르세에 다시 와 원 없이 사진도 찍고 내부도 둘러봤다.
그림을 좋아하는 아내는 가장 위쪽 전시관부터 하나씩 밑으로 내려오며 보고 싶은 명화들을 배경으로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나도 옆에서 즐거워한 아내를 위해 사진도 찍어주고 같이 그림도 감상했다. 사실 아이들은 그림에 별 관심이 없었고, 다리가 아프다며 의자만 있으면 앉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와 결혼해 10년 넘게 열심히 살아온 아내가 웃는 모습을 보니 힘들다고 투정 부렸던 나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오르세 미술관 2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브런치 메뉴와 로제 와인을 마시며 아내는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만약 내가 호텔에 그냥 있었으면 아내가 얼마나 상심했을까' 생각하니 나오길 참 잘했다 싶었다.
오르세 미술관을 나와 센강을 따라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향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2019년 화재 이후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라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었고, 외부에 계단식으로 마련된 전망대에 앉아 바라봐야 했다.
예전에 왔을 때는 내부에 들어가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엔 들을 수 없어 아내는 아쉬워했다. 그러나 노트르담 대성당의 도로 원표를 보며 "파리에 다시 돌아오자"라고 아내와 약속하며 자리를 옮겼다.
파리시청과 퐁피두센터 등을 지나 숙소가 있는 마레지구를 저녁까지 둘러봤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고 저녁을 먹으러 다시 나섰다.
파리에 도착해서 계속 빵이나 현지식만 먹다 보니 배도 안 차고 뭔가 느끼하기도 해서, 아시아 음식을 먹자는데 아내와 의견이 일치했다.
숙소 근처에서 구글맵을 열심히 뒤지다가 찾아낸 'Happy Nouilles'. 면요리가 중심인 중국음식점이었는데 저녁 7시 정도 방문하니 남은 자리가 딱 1개 있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이곳에서 볶음국수와 탕수육 비슷한 요리 등을 시켜 먹는데 아내는 물론 아이들도 대만족. 식사를 다하고 나오니 가게 밖에 웨이팅이 길게 늘어서 있어 또 한 번 놀랐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셋째 날도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