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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지석 May 15. 2019

#8. 여행을 하는 이유

여행이라는 나무에서 관점이라는 도구를 통해 얻은 열매

위수지역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외출을 나가 있는 군인들을 불러 모아 대응하기 위해 위수지역이라는 제도가 있다. 휴가를 제외하고 외출, 외박 시 어느 한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제도인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도였다.

실제로 위수지역을 이탈해서 징계를 받거나 질타를 받은 동료나 부하들이 여럿 있었고, 이로 인한 개인 사생활은 무시되기도 일쑤였다.


여담으로 스마트폰이 활성화되지 않은 인천에서 근무할 때는 부대에서 위치 파악 전화가 오면 주변 공중전화나 가게 전화를 이용해 032(인천) 발신자 번호가 찍히는 전화로 부대에 응신을 해야 했고, 나중에는 네이버 지도 현 위치를 캡처해서 응신하기도 했다.


최근 육군은 이러한 위수지역 제도를 폐지하고 시간 단위 개념으로 제도를 바꾸었다고 한다. 참으로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이런 게 장병들의 피부에 와 닿는 복지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나의 재발견

위수지역에 묶여있던 나는 군 복무를 하면서 여행을 많이 다녔다. 한 달에 한번 가는 연가(휴가)때 위수지역에 묶여있던 해방감에 사로잡혀 어디로든 멀리 떠나고자 했다.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공문 작성과 소정의 안전교육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번거롭고 귀찮아서 가지 않았다. 대신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보다는 아니지만 국내 여행을 방방곡곡 다녀봤다.


여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건 특히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도심에 살았던 나는 내가 바다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 물에서 헤엄치며 노는 것보다 강릉 안목해변 카페에 앉아 바다를 마냥 보고 있는 게 좋았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복잡한 생각이 둥근원을 그리며 퍼즐이 맞춰지듯 평온해졌다. 전역을 앞두고 자소서(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안목해변 카페에 앉아 떠오르는 영감에 자소설(자기소설)을 작성하기도 했다.


똑같은 곳 다른 시선

똑같은 곳, 비슷한 곳을 가더라도 여행을 할 때면 새로운 시선에 항상 새롭다. 최근엔 서해안 만리포 해변을 다녀왔는데 현역군인의 시선과 민간인의 시선이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친한 대학 동기는 아직 현역군인이다. 서해안 만리포 해변을 지키는 현역 군인인데 하루는 위수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친구를 위해 친구도 볼 겸 1박 2일 여행을 갔다. 민간인이 된 시점에서 처음 간 서해안 바닷가였다.


서해안에서 보기 드문 서핑포인트인 만리포에서 서핑을 하고, 낙조와 함께 해변에 앉아 맥주 한잔에 하루를 마무리했다. 저녁 즈음 순찰을 마치고 전투복을 입고 온 친구와 만리포의 아름다운 낙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 이런 곳에서 근무하나! 낙조 너무 좋은데?"

"아니, 난 너무 싫은데?"

"왜?"

"해지면 순찰 가야 된다. 일터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느껴지겠나?"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지만 내 생각은 빗나갔고, 친구는 해변이 싫다고 했다. 일터에서 낙조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여유는 없다고 했다. 순간 일터와 휴양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똑같은 여행을 해도 다양한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열매는 다르다. 여행이 나에게 주는 선물은 항상 다른 관점과 영감을 준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여행의 결과보다는 과정 속에서 깨달음은 얻는다는 말이 있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을 숙성과정이라고 표현했다. 다른 사람에게 얻은 간접경험을 여행을 통해서 자신의 직접 경험을 만들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간접경험을 추가해야 비로소 여행이 완성된다고 했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말이다.


여행을 통해서 때로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몰랐던 관점과 시선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론가 자꾸 떠나는 게 아닐까?


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산책을 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같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출처 : 여행의 이유 - 김영하 作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출처 : 여행의 이유 - 김영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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