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장을 키워준 소대장님들
"저는 계급이 높지만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는 간부였고, 소대장들은 저보다 계급이 낮지만 연륜과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존중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내가 모 기업 최종면접에서 받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지금도 동호회나 회사에서 나이 많은 형님들과 남들보다 다르게 지낼 수 있는 노하우는 군 복무가 내게 준 선물과 같은 것이었다.
첨언을 붙여 설명하자면 일반 보병에서도 중대장의 종류가 나뉜다. 소총중대장, 본부중대장, 화기중대장, 수색중대장, 특전중대장 등 각기 부대마다 편제와 임무가 다르다. 태양의 후예 유시진 대위는 특전중대장(팀장)이었다.
일반적으로 중대장 1명에 3~4명의 소대장을 지휘하게 되고 그 밑으로 피라미드형 조직을 이끄는 구조다. 소대장은 소위나 중위와 같은 장교들이 맡게 되는데 화기중대는 군 경력이 많은 중사나 상사급 부사관이 소대장을 맡는다.
그중에서 나는 전방 화기중대장을 했다. 부임 후 부사관 소대장들과의 첫 만남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군 경력만 1소대장 남상사님은 18년 차, 2소대장 최중사님은 부사관으로 전역했다가 다시 재입대한 경력자, 3소대장 이중사님은 해군에서 복무하다 육군으로 임관한 경력자였고, 부소대장들이 내 나이와 비슷한 또래들이었다. 계급사회인 군대에서 나이로 서열을 구분하진 않았지만 한국 나이 26살에 40줄 형님들을 지휘해야 한다는 게 부담으로 밀려왔다.
영화에서나 보던 멋진 중대장을 생각했지만 그렇게 따라주지 않는 부사관 소대장들의 모습을 보고 처음엔 많이 답답했다. 그러던 중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읽었고,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먼저 변화를 준 것은 '왜 일까?'라는 질문과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역지사지의 마음에서 소대장들에게 포커스를 맞추었다. 상대방에게 조언을 하고 상대방이 하지 않는다고 내가 불편해한다면 그건 조언이 아니라 간섭이다라는 법률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난 소대장에게 동료로서 지휘를 하는 것이지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한 예로 결산회의 때 필기구를 가지고 오지 않는 모습에 불편한 적이 있었다. 속으로 '전파사항을 전파해주면 다 기억하는 건가?'라는 불편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후 내내 밖에서 교육훈련을 하거나 야외활동을 하다가 갑자기 결산 시간에 회의하자고 하면 필기구를 챙기지 않는 게 이해됐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었다.
사람의 집중력은 15분이 넘어가면 떨어진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15분 이내에 짧고 오래 남을 수 있는 회의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고, 회의 시작 전 단체 카톡방에 양식을 만들어 핸드폰을 보면서 회의를 했다. 안건을 미리 작성해 공유해주고 현장을 통제하는 소대장들의 제한사항을 피드백받아 퇴근 전 수정본을 공유하고 끝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둘러앉아 핸드폰을 보면서 회의한다는 게 그 당시엔 파격적이었다. 듣는 사람이 필기하지 않아도 카톡에 내용이 남아있으니 호응이 좋았다.
그렇게 사소한 것 하나씩 내가 소대장들에게 맞춰갔다. 술을 좋아하는 남상사와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그러면서 다른 대대 간부들의 우려와 걱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그릇된 판단이라는 걸 알게 됐다.
중대장을 하면서 참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렵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소대장들과 공유했다.
한 날 술자리에서 "중대장님, 사람이 시류에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됩니다."라는 장중사의 명언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때로는 팔로우십이 좋은 소대장처럼, 때로는 친형들처럼 어린 중대장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많이 주었다. 훗날 중대장을 마치고 파주를 떠날 때 연병장에서 서로 그렇게 펑펑 울었다.
어느 때보다 가치관 형성에 가장 도움이 되었고, 인생 선배들의 조언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20대의 기억한 편이다.
깊이 있는 사람은 가까이 있을 때 모르는 묵직한 향기를 남긴다.
*출처 : 언어의 온도 - 이기주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