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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지석 May 02. 2019

#1. 지난날에 대한 반성

 나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른 사람에게 깨달음을 얻다

무지(無知)에서 오는 두려움

임관 후 첫 부대 배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천의 모 동원사단이었다. 운이 좋았는지 학창 시절 선배님이 전임 소대장으로 인수인계를 해주었고, 다른 동기들 보단 비교적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학연의 끈은 오래가지 못했다. 뭐든지 일의 시작은 어렵다. 특히나 경험 부족에서 오는 무지(無知)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다.


"충성! 신고합니다." 행정반에서 중대장님에게 신고와 동시에 녹색 견장을 받고 소대장 임무에 발을 뗐다.

지금은 전입신고가 간소화되고 간담회 형식으로 바뀌었지만 그 당시에는 행정반이 쩌렁쩌렁 울리게 신고를 해야 했다. 그게 자신감이고 패기, 군인의 멋으로 보였다.


첫 중대장님은 소위 말해서 강성 중대장이었고, 나름 강하게 소대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어느 회사에서나 상급자가 부하직원에게 일을 가르쳐줄 때 삼국지의 장비처럼 업무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고, 관우처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다. 첫 중대장님은 장비 같은 강성 스타일에 심지어 업무는 스스로 파악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셨다.


너 이 병x새끼는 어떻게 소위를 달았지?

하루는 박격포 사격을 위해 파주 무건리 사격장에 갔다. 새벽부터 출발해야 되는 일정이라 그 전날부터 준비했지만 첫 박격포 사격인만큼 미흡한 게 많았다. 인접부대와 같이 사격하는 탓에 중대장님은 친한 인접 중대장들과 내기를 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부대별 자존심 싸움이 있었다. 사격은 안전하게 끝났지만 명중률이 낮아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중대장님은 사격 결과를 소대장의 교육훈련 탓으로 돌렸다. 다른 부대 소대장 동기들이 보는 앞에서 폭언을 들었다. 가슴이 아팠지만 군대에서 폭언 욕설은 당연한 곳이라고 생각했고, 업무를 배우는 과정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계급이 높고 경험이 없을수록 내세울 수 있는 건 1차원 적인 힘이었다. 흔히 말해 꿀리지 않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센척하는 모습이 필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대장님은 본인의 무지(無知)를 티 내기 싫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12군번들 BOQ앞으로 다 집합해라.

작은 부대에 5명이 동시에 전입 왔다. 선배들 중에 가장 무서운 선배는 1년 선배라고 한다. 하루는 동기한명이 잘못했다고 선배장교 한 명이 우리를 BOQ뒤로 집합시킨 적이 있었다. 어떤 이유로 집합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사소한 이유로 집합했다. 그때 우리는 이유도 잘 모른 채 그냥 잘하라는 식의 선배의 고함을 들었다.


그때 가장 멍청한 실수는 고함치는 그 모습이 왠지 군인답고 멋있어 보여 따라 했다는 것이다. 앞에서 혼을 내는 선배의 모습이야 말로 참군인의 표본처럼 보였다. 나는 군인처럼 멋있어 보이기 위해 그 모습을 어설프게 병사들 앞에서 따라 하는 실수를 범했다.




착각_잘못된 학습과 반성

모르는걸 상급자에게 묻는 건 잘못됐고, 스스로 파악하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 었다. 스스로 찾아보거나 해결해보려 하지 않고 묻는다면 가차 없이 중대장님의 폭언, 욕설이 되돌아왔다.


약 1년간 소대장 생활을 하면서 잘못된 학습을 하고 있었다. 잘못된 것이 잘못된 건지도 모른 채 나도 스펀지처럼 폭언, 욕설을 학습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고함을 쳐본 적도 없었지만 소대원들에게 고함을 치는 내 모습이 생겨났다.


1년이 지나고 내 무지(無知)가 걷힐 때쯤 중대장님이 바뀌었다. "야"라는 호칭 대신 이름을 불러주었고, 업무  지시와 지도가 명확한 중대장님이었다. 두 명의 중대장님을 보면서 '前중대장 같은 군인은 절대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소프트 카리스마'라는 모토로 중대를 이끌었던 새로운 중대장님을 만나고 내 지휘철학의 새싹이 피어났다.

패기만 넘치는 소대장 때는 그냥 쎄 보이고 싶었다. 괜히 어쭙잖게 체력단련실에서 무게를 잡으며 데드리프트를 했고, 일부로 욕설을 섞어가며 세게 말했다.


내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깊게 파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로 되갚아주는 실수를 범했다. 

만약 새로운 중대장님을 만나지 못하고 당연한 게 당연한 듯 지내며 그릇된 가치관이 형성됐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따금 강남역에서 그 시절 소대원들과 모임을 하는데 난 항상 죄인이다.


나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른 사람에게 배움과 깨달음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 출처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야마구치 슈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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