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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지석 May 03. 2019

#2. 가치관의 차이

자유란 자신이 책임질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

계급이 올라 대위가 되면 OAC라는 군사교육을 받게 된다. 인천에서 근무하는 게 무료해질 때쯤 나는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접해보기 위해 친한 동기들보다 일찍 교육에 입소했다. 어쩌면 이때가 미래 진급을 위한 진짜 경쟁의 시작점이 아닌가 싶다.


여담이지만 꼰대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거에는 상대평가로 시험성적을 메기는 탓에 새벽까지 공부와 과제가 넘쳐났다고 한다. 내가 교육받는 15년에는 다행히도? 교육성적에서 교육 평정이라는 제도로 바뀌고 성적도 합격/불합격으로 바뀌어서 조금은 수월해졌다고 하지만 나중에 보면 별반 다른 게 없었다.


OAC에선 자기주도학습(L&T: Learning & Teaching)으로 이루어진 교육을 했다. 담임교수처럼 담임교관이 한 클래스에 한 명씩 배정받아 교육생을 관리를 하는 시스템이다.


그때 만남 담임교관님은 나와 가치관의 차이가 있었다. 처음 느껴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가치관의 충돌이었다. 결론적으로 OAC때 가치관의 충돌로 회의감을 느끼고, 전역을 결심하게 된 기점이 됐다.


공부하다 죽어라

"공부하다 죽는 사람 못 봤다. 죽을 만큼 공부해라" 

"공부하다 죽어라"

교관님이 장난식으로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난 듣기 싫었다.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미명 아래 이해할 수 없는 과제들이 넘쳐났다.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 과제는 5페이지가 넘는 명령지를 똑같이 수기로 쓰는 것이었다. 때때로 노트 검사를 했기 때문에 보여주기 식 노트 작성도 빼놓을 수 없었다. 단순하게 노트를 빼곡하게 잘 정리하면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 됐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공부를 안 하는 사람으로 낙인 됐다. 퇴근 후 과제를 하면 밤 12시가 됐고, 이후 자기주도학습 공부를 했다. 그리고 아침 6시에 일어나 매일 3km 달리기를 했다.


공부하다 진짜 죽는다

"다른 교육대에서 사고가 났으니 오늘은 조용히 숙소에 대기해라" 

소위 때 만난 고향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의 별이 됐다. 가까운 친구였던지라 평소 친구의 체력을 보면 그렇게 갑자기 하늘의 별이 될 친구가 아니었다. 내가 3개월 먼저 교육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 전날 밤에도 교육자료를 공유해주었고, 그 날 점심시간에 계단에서 마추지면서 했던 인사가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교관님이 나눠주는 근조리본을 난 가슴 켠에 차마 달지 못했다.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펑펑 운 기억이 있다. 


왜 안됩니까?

"왜 안됩니까?"

"어차피 내일 단체 조문 갈 거야, 안돼"

7월 23일 친구의 소식을 듣고 나는 울면서 교관님께 병원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안된다는 단호함은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나는 한걸음에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국군병원이었는데 나는 통제된 군인이라는 신분에 가지 못했다.

경사는 챙기지 못하더라도 조사는 챙기고 싶었고, 경조사 조차 내 맘대로 챙기지 못하는 신분에 회의감을 크게 느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가치관의 차이었다.




2년 후 나는 내가 받은 평정이 궁금해서 공개신청을 했다. 생각 외로 내 평정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차라리 공부만 열심히 해도 되는 교육성적 제도가 낫겠다는 생각을 했고, 교관의 주관이 개입된 평정제도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군대에서 흔히 말하는 술 많이 먹고 굽신거리면 진급한다는 얘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두 번째 OAC교육에 대한 회의감이 크게 밀려왔고, 또 다른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 - 미쉘 오바마


하지만 난 품위 있게 가지 못했다. 전역 후에도 나는 쫌생이처럼 교관님께 인사드리지 못했고, OAC를 같이 받았던 클래스 동기들 단체 카톡방도 나갔다. 훗날 서로의 가치관의 간극이 좁혀질 때쯤 소주 한잔 기울이고 싶다.

자유롭다는 것은 사회나 조직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손에 넣는 게 아니라,
자신이 책임질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다. - 장 폴 샤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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