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을 열어줘야 상대방이 문을 열고 나온다
대위 계급을 달고 일반 육군 보병은 두 번의 중대장을 맡아야 한다. 1차 중대장, 2차 중대장으로 나뉘는데 주변 평정과 부대 사정이 고려되어 상급부대에서 배치한다. 장유유서라고 하긴 그렇지만 나름 진급이 임박한 2차 중대장을 위해 1차 중대장은 평정은 깔아준다는 분위기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만 내가 1차 중대장을 했던 대대의 분위기는 그랬다.
1차 중대장 발령지는 파주의 모 최전방 사단이었다. 중대장 임무를 GOP에서 시작했고, 신고 후 책상에 앉았을 땐 한숨만 푹푹 쉬었다. 갑자기 생긴 책임감에 부담감이 밀려왔다.
한숨을 내뱉고 들숨을 할 때쯤 목표 설정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차 중대장 때는 평정을 깔아준다는 분위기인 탓에 목표를 크게 잡지도 않았고, 그만큼 욕심도 없었다. 목표는 현실적이며 소박하게 '무사고'라는 목표를 세웠다.
어떤 지휘관이 되고 싶었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아직 가을철 다 익지 않은 떫은 감처럼 어설프기만 한 중대장이었다. 나는 중화기를 다루는 중대장을 해서 소대장들이 군 복무 15년 이상의 부사관들이었다. 나는 계급이 높지만 경험이 없는 중대장이었고, 소대장들은 계급이 낮지만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소대장들이었다.
이런 환경은 나를 자연스럽게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나만의 긍정형 리더십을 키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성과로 만들어낸 문서에 적힌 이름보다는 내가 떠났을 때도 부사관단에서 구전처럼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지휘관이 되고 싶었다.
1 소대장과의 만남
1 소대장은 군 복무 18년 차 베테랑 상사(계급)였다. 파주지역에서만 18년을 복무했고, 누구보다 자신의 업무에 자부심이 강해 몇몇 사람들과 트러블이 있었다. 인수인계해준 전임 중대장도 나한테 1 소대장은 통제안되고 힘들 거라고 했었다. 사고가 난다면 1 소대장에서 시작될 거라고 했다. 첫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었던 것 같다.
군 복무 18년 차 40대 1 소대장과 친해진 계기는 우연한 이슈였다. 하루는 숙소에 있다가 소초에 불시 순찰을 간 적이 있다. 소초장실 문을 여는 순간 문이 잠겨있었고, 두세 번 두드림 후 1 소대장을 포함 몇몇 간부들이 모여 맥주와 함께 야식을 먹고 있었다. 야식을 먹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최전방 GOP에서 술을 먹는다는 건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다. 확인해보니 실탄을 들고 작전에 투입되는 간부들은 먹지 않고, 휴식 조인 간부만 맥주 두어 캔 먹은 것 같았고, 나름 간부들끼리 정해둔 룰이 있는 것 같았다.
부임 초기부터 이런 시련이 닥치다니 너무 가혹했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대대장에게 보고할 것인가? 아니면 아직 내 업무도 파악 못했는데 굳이 일을 크게 벌릴 필요가 있는가? 큰 고민에 빠졌고, 나는 후자를 택했다.
다음날 난 상급부대에 보고하지 않았다. 대신 1 소대장과 부중대장을 불러 진솔한 대화를 했다. 나무라지도 않았고,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다. 정말 솔직한 내 감정을 이야기했고, "왜?"라는 질문을 했다.
1 소대장은 왜 몰래 그렇게 모여 술은 먹었는지 궁금해하는 천진난만한 중대장 모습에 당황했다. 그 날 나는 알지 못했던 시스템과 간부들의 고충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 이후 같은 이슈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만약 화를 냈다면 1 소대장과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6개월 지나 GOP에서 철수한 후 1 소대장과 술 한잔 기울이면서 말한 적이 있다. 다른 지휘관이었다면 그 자리에 있었던 간부들 다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예하 부하들이 일으킨 잘못을 "왜"라며 다른 시선에서 바라봐준 사람은 처음이었고 믿음이 갔다고 했다.
이후 남은 약 1년의 중대장 기간은 마치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 대위와 서대영 상사처럼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남아 누구보다 즐기면서 재밌게 중대장을 했다. 다음 에피소드 중에서도 1 소대장 이야기는 많이 나올 것 같다.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 보다는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하다.
* 출처 : 언어의 온도 - 이기주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