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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지석 May 07. 2019

#4.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취미를 갖게 된 계기

어느 위치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건 매우 낯설고 힘들다. 군 복무를 하면서 약 1년 6개월 ~ 2년 주기로 보직을 옮겨 다녔지만 환경의 변화는 쉽지 않았다. 난 대게 일주일 정도 환경에 적응하는 일명 로딩 시간이 걸리는데 빠르면 하루, 이틀 만에 적응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전입하게 되면 인사업무 담당자를 제외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보안담당자를 만나는 게 아닌가 싶다. 회사도 마찬가지지만 군대에서 보안은 생명과도 같다. 훈련, 작전계획 등 비밀 유출에 따른 피해는 전시 때 생명과도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군대에서는 사소한 보안이라도 보안사고는 책임을 물었다.


보안담당자에게 가면 전입에 따른 각종 서류를 작성하게 한다. 그중 하나가 신상명세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해가 지날수록 양식이 조금씩 바뀌었지만 항상 신상명세서에는 취미/특기를 넣는 칸이 있다.

내가 취미를 갖게 된 계기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취미 하나 없었구나

중대장 전입신고를 하고 신상명세서를 받아 들고 책상에 앉았을 때 한숨이 1분에 10번은 나오는 듯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실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사소했지만 깔끔하게 작성해주는 게 내 첫 업무라고 생각했고, 나름 꼼꼼하게 작성하려고 했다. 의외로 가장 쉽게 적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칸은 취미/특기 칸이었다.


예전엔 그저 취미는 운동, 음악 감상, 독서를 적었고 특기는 컴퓨터 게임이라고 썼다. 무심결에 대충 작성할 수 있었지만 그때 뭔가에 홀린 듯 취미와 특기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내가 잘하는 게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결국 또 취미 운동, 특기 운동이라고 작성하고 제출했다.


테니스에 빠져들다

6개월 후 답답했던 GOP를 철수하고 FEBA(일반훈련부대)로 나오게 되었다. 철수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못 먹던 술을 엄청 먹는 것도 아니고, 여행 간 것도 아니고 취미를 하나 만들고 싶었다.


처음엔 무엇을 해야 될지 몰라 후배를 한 명 데리고 무작정 문산 읍내를 돌아다녔다. 운동을 좋아해서 축구장, 풋살장, 배드민턴장, 헬스장을 돌아다녔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그러던 중 새로 배정받은 숙소에 짐을 풀기 위해 귀가하던 중 숙소 근처 테니스장을 방문했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테니스장에 몇 번 가본 기억과 대학시절 교양수업으로 쳐본 경험은 있었지만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테니스장에서 동호인들이 치는 모습을 보고 매력을 느끼고 그날 저녁 바로 등록을 했다.


인터넷 쇼핑에서 고민은 배송을 늦출 뿐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고민했다가는 흐지부지될 것 같아 라켓, 신발도 없는데 무작정 코치에게 돈부터 냈다. 그 주말 일산까지 나가 장비를 구입하고 정식 테니스인으로 입문하게 됐다. 그리고 내 신상명세서엔 당당하게 취미는 테니스라고 적혔다.




군대에서 높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테니스를 배운 게 아니다. 요새는 군대에서도 테니스를 치지 않는다. 그리고 군인들과 치는 테니스는 오히려 진정한 취미활동이 아닌 업무인 것 같아 같은 군인들과는 테니스를 치고 싶지 않았다.


잦은 야근으로 시간을 쪼갤 수 있는 건 새벽시간이었다. 매일 새벽 6시에 레슨을 받았는데 전날 과음해도 10개월 동안 한 번도 레슨을 빠진 적이 없었다. 

진정한 취미생활에는 재미가 따라왔고 아침잠이 많은 내가 이렇게 새벽에 즐길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테니스를 치면서 많은 게 바뀌었다. 라켓에 공을 맞추는 맛에 중독되어 나름 스트레스 관리도 됐다. 화가 나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그날은 공을 더 세게 쳤다. 


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있던 내가 많은 사회인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더 많은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군인이 사회에 도전했을 때 운 좋게 바로 취업할 수 있었던 것도 테니스 동호회 형님들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 않나 싶다.


지금은 개인적인 이유로 테니스를 좀 쉬고 있다. 하지만 글쓰기라는 취미가 하나 더 생겼다. 휴일에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도움이 되는 글귀를 곱씹는 게 좋아졌다. 어린 시절에는 책보다는 몸으로 움직이는 걸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글을 읽고 쓰는 게 좋아졌다. 별 이유 없이 글쓰기에 감흥을 느끼어 내 마음이 당기는 대로 즐기고 있다. 그만큼 꼰대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것 같기도 하다.


취미(趣味) :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 출처 : 네이버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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