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은 쉬워도 치사랑은 어렵다
글을 쓰는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빠른 년생이라 학교를 남들보다 1년 일찍 들어간 나는 대학 입학 19살 때부터 부모님의 품을 떠나 독립을 했다.
매일 둥지 안의 어린 새처럼 지내다가 바깥을 향해 날개를 편 순간 모든 게 어색했다. 밥은 어떻게 먹어야 할지, 빨래는 어떻게 하는 건지도 어색해 간단한 것도 어머니께 전화해서 물어봤다. 밥과 빨래가 익숙해졌지만 괜히 어머니께 전화해서 안부차 겸사겸사 물어보기도 했다. 지금도 퇴근길이면 일주일에 3~4통씩 안부전화를 한다.
우리 어머니는 별다른 특별한 일 없으면 절대 먼저 전화를 하시지 않는다. 바쁜 아들이 일하는데 혹은 여자 친구랑 데이트하는데 방해가 될까 봐 일부러 안 하신다고 한다. 안부 전화하는 것도 미안해서 안 하시는 게 아니라 못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은 다 같지 않을까 싶다.
중대장을 하면서 많은 부모님들을 만나 뵈었다. 요새는 SNS 발달로 인터넷 소통창구가 많이 열려있다. 전입 신병이 오면 저녁을 먹고 중대장과 면담 이후 각자 개인 시간을 갖는다. 면담이 끝나면 나는 중대장실 안에서 전입신병 부모님께 안부전화나 SNS 메시지를 드렸다.
수많은 가정사가 있지만 10명의 부모님 중 10명은 '무사히 잘 배치받았습니까?'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걱정 어린 인사를 시작으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내 역할은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리고 걱정을 해소시켜드리는 일이었다. 면담 때 표정이 어둡거나 부모님께도 말 못 할 사정이 있더라도 '아드님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는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S이병의 아버지
그중 생각나는 어느 아버님이 계신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한 아버지께서는 아들과 이야기하고 소통하고 계신다고 생각했지만 아들 입장에서 막상 군대에서 힘든 일을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현역에서 부대의 승인을 받아 공익이나 전역을 할 수 있는 현역복무부적합심의(현부심)라는 제도가 있다.
현부심에 있어서 부모님 동의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절차상 보호자에게 통보하고 관련 내용을 참고사항으로 서류에 기록한다.
S이병은 관심병사였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충동 징후가 있어 군 복무가 어려워 보였다. 당연히 대대장과 중대장은 지휘부담을 느껴 현부심을 추진하고자 했고, 관련 진행 절차에 들어갔다. 외국에 나가 계신 아버님께 인터넷 국제전화로 소식을 알리자마자 S이병의 아버지는 생업을 잠시 접으시고 주말 한국에 들어와 아들 면회를 하셨다.
면회 이후 중대장을 만난 자리에서 아버님도 군 장교 출신인데 자기 아들이 이렇게 힘들어할지는 상상도 못 했다고 말씀하셨다. 평소에 소통한다고 했지만 모든 게 자신의 불찰이라고 하시며 모든 게 자식을 잘못 키운 자기 잘못이고 부대에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그렇게 아버님은 새파랗게 어린 장교 후배 중대장 앞에서 머리는 숙이셨다. 나는 단지 중대장이라는 직책을 달았다는 이유로 많은 부모님 앞에서 섭섭한 위로의 말을 올릴 수 있었다.
아들뻘, 조카뻘 되는 새파랗게 어린 시건방진 중대장 앞에서 허리를 숙여주신 부모님의 모습에서 참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부모나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은 똑같다. 그런 사과를 받을 때면 부담스럽기도 했고, 규정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 너무나 아쉬웠다.
그런 날이 있을 땐 퇴근길에 어머니께 괜히 안부전화 한 통 했다.
오늘도 어버이날이라는 핑계로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나무는 조용히 있으려 하지만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려 하지만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