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_난(蘭)이 있으면 생각나기 마련이다.
법정스님의 가치관을 그대로 녹인 <무소유>에서 그는 난이 주는 소유욕을 언급했다. 집에 있는 난 걱정에 몸은 떠나 있지만 마음은 집에 둘 수밖에 없었음을, 이것이 소유의 족쇄. 물고기는 단단히 족쇄를 채웠다. 직장의 한계는 주말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우리와 물고기는 주중부부가 되었고 우리는 못 보는 주말 동안 애를 태웠다. 그래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주말은 열대어를 오롯이 공부하는 시간이 되었다. 전문 서적 읽기, 전문 지식 유튜버 시청, 다양한 물생활 커뮤니티와 개인만의 물생활 시스템 탐독 등 손 닿을 수 있는 곳이면 다 찾아다녔다.
아주머니 : 최소한 히터랑 여과기만 있으면 그렇게 안 비싸요.
분명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홈X러스 수족관 담당 아주머니의 말씀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많아도 3만 원씩 갹출하여 어항 하나를 해보자고 했었다. 어항을 샀고, 레이아웃을 생각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돌을 주워왔고, 최대한 싸게 맞추기 위해 최저가 검색을 열심히 했다. 여기까지는 돈이 얼마 안 들었고, 갹출 3만 원이면 물고기 밥까지도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바닥재(박테리아가 살아가기에)가 있어야 좋다는 말에 바닥재를 샀고, 바닥재가 있으니 욕심이 생겨 간단한 수경식물과 수초를 샀고, 조명을 포함한 수초 관련 용품을 샀다. 그리고 몇 주를 운영해보니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어항에 손을 넣을 수 없으니 핀셋도 필요했고, 물고기를 건질 뜰채도 필요했고, 온도계도 사는 김에 간지나게 전자식 온도계도 사고, 밥도 여러 종류를 급여하는 게 좋다고 하니 또 밥을 사고, 어항을 유지할 박테리아 활성제와 박테리아제도 사고, 초보라 물을 잘 못 잡아서 아이들이 아프고, 아픈 것에 대처도 해야 해서 생물봉투도 사고 약도 사고, 영양제도 사고, 비타민도 사고, 보조 어항을 사고, 등등을 사고, 교통사고….
이렇게 난리를 치기 전, 그러니깐 어항을 운영하겠다고 입을 털고 다니기 전 주변에 어떤 사람이 얘기했다.
주변의 A 씨 : 어항 한다고? 그거 고급 취미라고 하던데. 돈 엄청 깨져.
몰랐다. 물생활 처음 들었던 얘기는 위의 마트 아주머니의 얘기가 아니라 아래 얘기였다. 우리가 일을 더 열심히 할 이유가 생겼다. 돈이 필요하니까. 어항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미리 좀 더 귀띔해주지.
중학교 한문 시간. 선생님께서 외우라고 시키신 한자들을 못 외워서 다음 수업에 가면 회초리로 종아리를 피멍이 들 때까지 맞았다. 성인이 된 후 다시 찾아간 학교에서 웃으면서 따지니 술을 사주셨다. 그거면 됐다.
이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결국 '어항은 번식한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웃긴 얘기일 수 있겠지만 어항은 하나만 들일 수는 없다.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은 어항을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어항을 하나 들이는 순간 결코 그걸로 끝이 나지 않는다. 관상어 종류는 왜 이리도 많은지, 왜 또 같이 키울 수가 없는지, 구피 이 놈들은 왜 이렇게 번식을 잘해서 어항을 늘리게 만드는지(스포니까 취소선) 도통 하나로만 끝낼 수 없다. 웃기게도 번식은 어항이 하는데 돈은 내 돈이 나간다. 그래서 우리의 돈으로 어항을 늘렸다. 19년 8월 말 기준으로는 사무실에 3개의 어항이 있다(자세한 건 본편에서 추후에). 크기도 제 멋대로여서 일렬로 세워놓았을 때 멋짐이 뿜뿜 나지는 않더라도 각자마다의 개성이 있다.
어항에는 넣을 수 있는 게 수도 없이 많다. 물론 이상한 것을 넣으면 물성치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못 넣는 것도 많다. 각설하고 어떻게 넣느냐,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서 그 분위기가 무한정 달라진다. 미적감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리고 돈이 많다면 얼마든지 어항을 꾸밀 수 있다. 그래서 돈이 많아야 하는 건 진짜다. 그다지 크지 않은 담수어항 1개를 예쁘게 꾸미기 위해서는 수 십만 원은 쉽게 깨진다. 지금까지 나간 돈은 마음에 묻자. 글 쓰면서 수 없이도 다짐한다.
중학교 한문 시간. 한자를 참 많이도 외웠다. 그중에 하나가 다다익선이었다. 피멍이 들어 집에 가면 부모님께 숨기기 급급했다. 그걸 보였다가는 이중처벌을 받기 때문에 그냥 한자 몇 자 못 외운 게 다인데 집에서도 혼난다. 그래서 열심히 숨겼다. 그러면서 배운 사자성어, 다다익선.
다른 애완동물과 달리 물고기의 최대 난점은 만지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육지생물이고, 물고기는 수중생물이니 접점은 없다. 내가 물에 들어가거나 물고기들이 나오지 않는 이상 우리는 만날 수 없다. 그 접점을 5T의 얇은 유리로 만든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들은 다양한 반응으로 얘기한다. 한 번씩 눈을 맞추고 있으면 필요를 충분히 전달한다. 대화가 된다.
밥을 주고, 물을 갈아주고, 물고기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서 작은 생태계를 만든다. 움직이는 것만이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수초들은 움직이진 않더라도 호흡하며 작은 생태계에 에너지를 보탠다. 그리고 수초들도 마찬가지로 나와 대화한다. 수 십 리터 작은 생태계 안에 작은 생물과 소통하며 자연을 알아간다. 말 못 하는 작은 동식물의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는 멍하니 어항을 들여다본다. 그저 유영하는 흩날리는 그들을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결국 알게 된다. 자연은 진짜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