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 중 마음의 별이 보였어 #01

고쳐 그리기

by 사단화

오랜 시간 동안 취미가 없었다. 취미는 내 프로필에 쓸 수 없었으니까.

'이력서에 한 줄'


어디에 쓰일지도 모르는 프로필에 모든 것을 사로잡혀서 살았다. 꿈도 막연했고, 하고 싶은 것 또한 명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프로필에 한 줄을 더 추가하기 위해 악착같이 지냈다. 돈은 뒷전으로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 했고 그것을 한 줄 프로필에 쓰는데 모든 것을 쏟았다.

늦었다고 생각했다. 24살에 대학에 입학하여 더 숨도 못 고를 정도로 스프린터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뒤를 돌았을 때 함께 뛰는 이는 없었으며 가지고 있는 것은 꾹꾹 자판을 눌러써서 한두 줄 추가한 프로필뿐이었다. 20대에 관한 기억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흔한 홍대의 밤문화는 프로필에 쓸 수 없으니까.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



한창 신입사원으로 일해야 하는 나이에 취미에 손과 발 모두를 붙이고 있다. 마음의 여유 -그리고 돈(별표를 좀 치고 싶다)- 가 조금 생기니 그 틈을 비집고 여러 취미가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는 게임기를 샀다. 내가 게임을 이렇게 좋아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나에 대해서 알려준 게임기님께 감사드린다. 모든 게임들은 아니다. 축구게임만 좋아한다. 축구를 못하니 게임이라도 잘하자는 생각이다.

관상어를 키운다. 동물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가장 대중적인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더라도 귀엽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만지고 싶지 않았다. 만지면 손을 닦아야 하는 줄만 알았고, 누군가 그들의 반려동물과 뽀뽀하는 모습은 참 보기 싫었다. 그러나 관상어를 키우니 알겠다. 만지고 싶어 죽겠다. 그렇지만 그 친구들을 만지기에는 내 손이 너무 뜨거우며, 관상어는 나를 반기지도 않는다. 나보다는 밥을 반기더라.

그림을 그린다. 더럽다 생각할 정도로 미술에 소질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글씨를 하두 못 쓰니 부모님은 나를 서예학원으로 보내어 1년 정도를 글씨 교정을 시켰다. 그럼에도 글씨를 아직도 못 써서 손글씨로 누군가에게 편지라도 써서 주면, 해석을 요청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만큼 손으로 무엇을 표현하는 데는 서툴렀고, 미술도 마찬가지였다. 영 성적을 깎아 먹는 주범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그리기로 스스로 만족했을 때는 초등학교 피카츄를 대고 그린 후 스스로에게 쓰담해준 날이었다. 그런 놈이 그림을 그린다.


세 가지의 취미는 일꾼으로서 내가 아니라 나 자체로서의 나를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주말인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다.


붓을 쥐다.



피카츄를 대고 그리던 놈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취미에는 벽이 없다는 사실이다. 취미는 어느 전문성도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잘하든 못하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그러나 오늘 엄마한테 '넌 그리기에 재능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엄마가 그렇게 낳았으면서). 그저 내 만족이면 된다. 스스로가 재미가 있고 그것을 유지해 나간다면 취미이다. 그 생각에 마음 편히 붓을 들고 캔버스에 채색을 했다. 누구든 하고 싶을 것을 하면 된다. 그게 취미니까.

다른 이유는 시중에 명화그리기 세트가 판매되고 있다. 세트를 구매하면 도안(면천캔버스 형태)과 물감과 붓, 마감재까지 모든 것이 세트로 배송된다. 물감에는 색별로 번호가 매겨져 있고, 캔버스에는 도안이 그려져 있고, 도안 안에는 번호가 써져있다. 예를 들어, 1번 면에다가는 1번 물감을 칠하면 된다. 이 얼마나 직관적이고 쉬운 설명의 형태인가. 감동스럽다. 따로 색 배합이라든가 선을 딸 필요가 없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1번 물감에 붓을 넣고, 뺀 다음에 1번 표시가 있는 곳에 색칠만 하면 된다. 마치 어릴 때 하던 색칠하기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다. 다만 수채화라는 것 정도가 다르다. 자본주의가 이런 면에서는 참 좋다. 소비자의 욕구와 실력을 배려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다니. 거기에 가격도 착해서, 만 원 정도 수준이면 40cmX50cm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명화그리기 세트는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아는 사람들만 그린다. 피카츄를 대고 그러던 놈은 주변에서 선물을 받았다. 그래서 명화그리기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림을 그리게 색칠하게 되었다. 선물을 받으면서 들었던 얘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이거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도 시작할 수 있어요. 그냥 선에 맞게 색칠만 하면 돼요.

운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쉽고, 값싸게 미술에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나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에 감동했다. 그러나 감동은 오래가진 못했다(오래갔습니다^오^).



그리다.



선물을 받은 사이즈는 앞서 말한 40cmX50cm의 그림이었는데, 이것을 선에 맞게끔 칠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쉬운 난이도의 그림이라 할지라도 족히 수 십 시간은 걸렸다. 몇 시간 내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집념을 담은 인고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붓을 잡고 5시간쯤 지났을 때 비로소 내가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서 조금 더 쉬워 보이는 그림을 주문했다. 이름부터 간지 나고 여름에 알맞은 '산토리니'였다. 바다 풍경과 여유로운 도시의 모습을 담고, 주로 파란색과 흰색으로 이뤄지고, 색칠하는 면도 넓어 보였다. 이왕 하는 거 더 잘하기 위해 철제 이젤도 구입했다.

그리고 산토리니를 시작했다. 그나마 앞선 것보다 더 난이도가 쉬운 그림에 속하긴 했으나, 이것도 40cmX50cm의 크기인지라 쉽지 않았다. 주중에는 손대는 것 자체가 무서워서 간간히 주말에만 작업을 진행했다. 열심히 그렸다고 생각했으나, 시간은 계속 흘렀다. 입추가 지나고, 9월이 되었다. 아직 못 그렸다. 더운 여름과 딱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요즘 최저기온은 20도를 밑돈다. 시원하게 보는 것은 내년 여름을 기약해야겠다.



고쳐 그리다.



그림에 몇 시간을 멍하니 채색을 하다 보면 선을 넘어가거나 실수로 다른 면에 붓을 찍기도 한다. 처음에는 참 당황했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틀린 것에 불안함을 느꼈다. 그러다가 혼자 취미임을 되새겼다. 불안함이 드는 것부터 '즐길 수 없다'는 것일 테니. 나만 좋으면 됐다. 더욱이 명화그리기 세트의 그림은 판매자가 정한 가이드라인일 뿐 그것을 어떻게 칠하는가는 내가 선택할 문제였다. 1번 도안에 2번 물감으로 채색을 해도 되었다. 선택의 주체는 나였다. 이미 산 순간부터 소유권은 나에게 있다. 잊고 있었다. 단순하지만 당연한 것. 그 어떤 이도 내가 칠하는 방향과 선택에 뭐라 할 수 없다.

그래도 처음, 제대로 하는 것이니 가이드라인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색감도 그림실력도 형편없으니, 우선은 주어진 설명대로 그리기로 했다. 고쳐보기로 했다. 휴지로 닦았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마른 후 다른 색으로 칠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 적어도 미술 교과를 이수를 했으니 이 정도의 사고는 가능하다(당연한 말인데, 나는 이 생각까지 꽤 오래 걸렸다ㅜ.ㅜ).

선을 넘어서 채색된 부분을 잠시 잊고 다른 부분을 채색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잘못된 부분을 덧입혀서 채색을 했다. 말끔하게 잘못 찍힌 부분이 가려졌다. 판매자가 제시한 대로 정확한 부분에 정확한 색이 입혀졌다. 별안간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면서 그림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작은 흠집이 사라지니 그렇게 예뻤다. 몇 번의 실수가 더해지는 것을 덧칠하여 없애니 이제 잘못 칠해지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고칠 수 있으니까. 잘못되더라도 되돌릴 수 있으니.



그림 그리기는 그리는 사람의 마음대로 색을 칠한다. 그리고 언제든 마르기만 기다리면 고칠 수 있다. 선택은 그리는 사람에게 달렸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명화그리기 세트를 한 작품도 완성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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