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어를 키운다5

회전목마는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로

by 사단화

영원한 것처럼 느껴지는 삶, 이면에는 언제나 어디서나 끝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끝은 존재한다. 당신은 우리에게 끝만을 보여줬다. 죽음 옆에 서있는 탄생이 궁금하였으나, 알 길이 없다. 끝은 이미 나버렸으니. 죽은 이는 말이 없다.



못친소


못생긴 주인의 잘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

한 번도 제대로 8마리의 팔벤저스를 소개한 적이 없다. 그래서 잠시, 우리 회사를 지키는 수호신들을 소개할까 한다. 1~4를 통해 몇 마리가 용궁으로 떠났지만 그래도 간단히 얘기하는 것이 좀 더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의 어항을 통한 월급 루팡 생태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옐로테일 구피가 3마리가 있다. 암컷 두 마리, 수컷 한 마리로 2:1 성비가 구피에게 최고의 비율이라고 한다. 수컷은 심각할 정도로 암컷을 따라다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분산하기 위해서 그래서 수컷의 이름은 '사자'가 되었다. 생태계의 킹이 되라고 지어주었다. 암컷들의 이름은 하나는 앞서 얘기한 새끼를 잘 낳고 떠난 '노랭이', 나머지는 6cm가 넘는 중형급 몸집에 여장부라는 의미에서 '치타'라고 지었다.

레드테일 구피도 3마리가 있다(미안한 얘기지만 구피가 완전한 고정종이 아니고서야 이름을 멋대로 부른다. 워낙 다양한 종끼리 혈이 섞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물생활의 시작은 구피라고 하지 않았던가. 노란색과 빨간색의 조화는 마치 신호등처럼 우리에게 쉼과 멈춤을 의미한다. 맞다. 그냥 개소리다. 예뻐 보여서 분양받았다. 여하튼 빨간색 구피도 3마리가 있다. 성비를 맞춰 데리고 왔다. 가장 처음 얘기할 친구는 치타와 그 등치를 견줄 한 등치를 데려왔다. 이름은 '제시', 치타를 치타라고 지으니 치타와 어깨를 나란히 할 네이밍이 필요했는데 제시가 아주 적절해 보였다. 남은 암컷 친구의 이름은 '검둥이'였다. 꼬리 부분에 유난히 검은색 발색이 올라와 있던 친구다. 이래서 초등학교 때 창의력 교육이 필요한가 보다. 마지막으로 수컷의 이름은 '진사'로 지었다. 진짜 사자의 약어인데, 쓰면서도 부끄러워지고 있다. 밀림의 왕이 되길 바랐다.

청소물고기로 불리는 친구들 두 마리를 더 데리고 왔다. 성별은 모른다. 물고기 친구들에게 수차례 물었으나 답을 안 해주니 알 길이 없다. 한 마리는 메깃과로 비파를 데리고 왔다. 초식성으로 열심히 어항 내 이끼 청소를 한다고 했으나 이 말보다는 20cm까지도 잘 자라주고 사육 난이도도 쉽다고 하여 데리고 왔다. 생긴 것도 어깨 형님처럼 생겨서 어항 내 깡패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다. 이름은 '비파'라고 불렀다. 충분히 아셨을 것이다. 이름 짓기가 어려워졌다. 머리의 한계가 왔기 때문이다. 나머지 한 마리는 성질 더러운 이끼 이터(eater), 골든알지이터이다. 이 친구의 이름은 'RG'로 지었다. 나름의 센스랄까. 진짜 글 그만 쓰고 싶다. 그리고 직장인 맞다. 초딩 아니다. 이 친구는 성어급이 되면 10cm 정도가 된다. 그러나 성적이 진짜 더러운 탓(육식 어종)에 많은 물생활 선배들이 비추하는 어종이었으나 금색의 색에 빠져서 그만 데려오고 말았다.


이렇게 8마리 팔벤저스, 처음으로 사무실에서 우리와 숨결을 나눌 물고기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강아지가 못 생긴 것을 모른다. 고양이가 예쁘지 않은 것을 모른다.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거울 속 나는 못 생긴 걸 안다.



어(魚)생은 회전목마



회전목마에서 중요한 것은 '회전'일까, 아니면 '목마'일까. 내 생각으로는 제한된 부지의 놀이동산에서 놀이기구를 놓는다는 것에 회전이라는 의미가 더 중요해 보인다. 그래야 기구의 면적을 줄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많은 삶도 수차례 회전하며 우리에게까지 선물로 왔다. 어쩌다가 운이 좋아 톱니바퀴가 우리랑 맞물려 태어난 물고기도 마찬가지겠지. 계속 삶을 돌겠지. 많은 물고기가 떠났다. 짧은 그들의 삶을 마치고, 자연으로 되돌아갔다.

노랭이와 사자가 가장 먼저 떠났다. 짧았던 사무실에서의 삶을 마치고 묻혔다. 그들도 사무실의 공기는 탁했으리라. 그리고 이어서 진사가 꼬리가 접히기 시작했다. 물이 안 좋든, 건강이 안 좋았든 뭐든 좋지 않았다. 나름의 조치를 취하려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다. 약품도 타보고, 소금욕도 해보고, 천연 약제도 물에 풀고 그 결과로 꽤 상태가 호전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 일에 집중하다가 느낌이 이상해 어항을 쳐다보니 헤엄을 치지 않았다. 아가미가 움직이지 않았다. 분명 괜찮아졌는데, 먹이 반응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틀렸다. 참 쉬운 것 같더라. 죽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마리가 어항 내 배를 보이며 누웠다. 어깨 형님, 비파가 하얀 배를 보이며 바닥에 누워있었다. 아가미를 통해 가쁜 숨을 내뿜었다. 죽음과 가까워졌다는 신호, 회전의 끝을 바라보는 포석. 그런 상황을 두고 일을 해야 했다. 따로 물 밖으로 꺼내 놓을 수도 바로 묻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같은 날 저녁을 먹으라는 신호와 함께 퇴근의 시간이 다가올 무렵 비파가 온 어항을 돌아다녔다. 본인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쥐어짜듯이, 무척 빠르게. 각 모서리를 유영함에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속도로.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끝내 아가미에서는 어떤 호흡도 뻗지 않았다. 친구를 또 묻었다. 제발, 여름철 비바람으로 세워둔 푯대가 뽑히거나 날아가지 않길 바라면서. 20cm까지 클 줄 알았는데 20개월도 함께 못 살았다. 꿈은 땅으로 꺼졌다.

산기가 찼다. 제시 얘기다. 빨간 꼬리를 힘겹게 흔들고 있었다. 비단 산모라고 하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 줄만 알았다. 짧은 물생활 눈으로 보았을 때도 배가 엄청 불러왔고, 새끼들이 배에 가득 찬 것처럼 느껴졌으니 산기가 분명히 찼다. 그래서 힘들 줄 알았다. 격리 통에 옮겼다. 사람 대신 산파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지나고 나서부터 밥을 거부하더니 어항 내에서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숨은 계속 힘겨워 보이는데. 새끼를 낳든 그렇지 않든 그녀를 풀어주기로 했다. 스트레스 반응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며칠 어떤 대처도 제시의 건강함을 되돌릴 수는 없었는데, 그 친구는 가쁜 숨을 몰아 내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치어가 태어날 기미로 보았으나 엉덩이에서는 나오는 것이 없으매 건강의 이상이려니 생각되었다. 이때 고민이 많이 되었다.


제시는 죽더라도 배라도 눌러서 안에 새끼라도 인공적으로 내보내 볼까?
그냥 공기 중에 계속 노출시켜 죽음이라도 당겨줄까?


실제로 오갔던 대화이다. 무엇보다도 마음 아팠던 사실은 그 배 안에는 분명 치어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출산 직전에 약해진 면역 체계와 마트 내 좋지 못했던 축양 환경 모두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4cm 정도, 손가락 하나보다도 짧은 생명체가 새끼를 낳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 건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는 새끼를 낳지 못하더라도 물속에서 편안히 생을 마무리하게 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을 기다렸다. 혼자가 아닌 여럿의. 그리고 불안한 예상은 언제나 그렇듯 좋지 않게 막을 내렸다.


이제 팔벤저스 중 3마리와 노랭이의 치어 중 일부가 남았다. 한자 반, 가로 40cm가 조금 넘는 생태계는 어떻게 될까. 몇몇 물고기를 키울 준비 없이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그게 우리일까. 모르겠다.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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