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어를 키운다6

천렵은 국물을 낳는다

by 사단화

천년송 아래, 당신과 손 맞잡은 그곳에 살랑 하늬바람이 불다. 얇은 신록이 발선에서 땅끝까지 영원히 이어지다. 새싹들은 청년의 시기를 맞아 그들의 향을 최대한 내뿜으며 계절을 알리다. 산기슭 흐르는 시내 소리에 눈길이 가닿다. 아아, 절기의 여름이다. 완연한 더위, 천렵의 계절이다.




천렵의 계절, 여름



여름이 맞이하여 바다로 계곡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7월 말, 8월 초 마치 나라에서 공휴일을 정하듯 회사는 유치원과 학생들의 방학에 맞춰 휴가를 내준다. 치사하게 휴가를 연차에서 까는 회사가 있는 반면(회사사랑 나라사랑♥) 따로 휴가를 주는 곳이 있을 정도로 그 기간은 정해져 있다. 한적한 시골의 펜션들은 한철 장사를 위해 여기저기 자신의 펜션을 홍보하고, 몰리는 인파 속 비싼 가격에 방을 내어준다. 이렇듯 일반화되어 있는 휴가철 모습에 뭐 별 수 있나 나도 가야지. 평범한 사람인 것을.

날씨를 한 달 전부터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있다면 이번 주 로또 번호 좀 추천 부탁드린다. 그렇기에 내가 계곡으로 놀러 가는 그날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숙소 예약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예약을 잡아 승리했으나, 운이 좋게도 막상 휴가날은 장마가 한창일 때였다. 용산역에서 출발할 때 한창 날씨가 비가 올 듯 안 올 듯 썸을 타더니, 가평역에 도착해서는 내리자마자 기어코 빗물이 퍼붓기 시작했다. 용산발 가평 도착 itx에서 얼마나 가평 날씨를 검색했던가. 비가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 얼마나 애가 탔던가. 놀러 가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던가. 연차를 아끼기 위해 일요일에 출발하여 월요일 오전 반차를 쓰고 오후에 출근하기로 한 나는 어떠한가. 날씨는 나를 보기 좋게 짓밟아 놓았다.

휴가 첫날이자 마지막 날 전 날, 오후께 짐을 풀고 일행과 함께 술을 마셨다. 비는 계속 떨어지고, 계곡은 흙탕물로 제 색을 감췄으며 우산은 없었다. 저녁이 되고, 늘 그렇듯 고기에 술을 마셨다. 밤이 되고 실내에서 영화를 틀고 술을 마셨다. 오랜 술 싸움에 지쳐가고 있을 때 한 줄기 광명이 비췄으니 가로등 불빛이었다. 우리는 불빛을 보며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 날 참 거짓말 같게 술은 동났고, 비도 사라졌다. 계곡물은 열심히 상류에서 하류로 연붉은 투명색을 띠며 흐르고 있었다. 꽤나 맑아졌다. 아침부터 계곡으로 뛰어 나갔다. 하지만 전날의 강한 비 탓으로 유속이 여전히 빨랐고 완전히 맑은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퇴실 시간은 너무도 빨랐고, 서둘러 서울로 출근해야 할 몸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 눈보다 느린 녀석을 잡자! 여름은 천렵의 계절이니까!

눈을 크게 뜨고 돌을 들쑤시고 다녔다. 하지만 눈이 작은 탓일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야, 이거 뭐야? 다슬기 아냐?
히트다! HIT!


빠른 유속과 엄청나게 불어난 물량을 견디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던 그 무엇보다 강한 존재, 다슬기가 친구의 손에 걸렸다. 다슬기는 굉장히 많은 종류가 우리나라 생태계에 존재하는데 이 놈은 껍데기가 삼각형의 형태인 것으로 보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아빠한테 물었다. 마찬가지로 종까지는 모르다고 하였지만 다슬기는 확실했다고 말했다. 다슬기! 개울의 웅담이 아니던가. 술로 쩌든 우리의 간을 맑게 만들어 줄 해독제였다.

하나, 둘 옆에 있는 사람이 채집을 시작했다. 계속되는 히트. 그러나 나는 잡지 못했다. 눈이 작아서였을까. 아니면 생명을 사랑하는 탓에 잡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깊게 내재되어 있던 것일까(사실 허리 숙이기가 귀찮기도 했던 거 같기도 하다). 옆 사람은 신나게 잡아주었고, 나는 신나게 구경해주었다. 둘 다 무엇인가를 했으니 노는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내 어디 굴러다니던 페트병을 들고 와 다슬기를 담았다. 계곡의 물도 넣어주었다. 이제 간단한 해감과 함께 다슬기는 우리의 뱃속으로 들어갈 터였다. 그때, 마음속에서 시작한 깊은 진동은 큰 떨림으로 우리에게 도달했다.



못친소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 아빠는 뽀뽀받을 자식이라도 있어서 출근길에 힘을 내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다슬기를 자식으로 삼아야 한다고 마음의 떨림이 얘기했다. 혼인 전 몸으로는 자식을 못 낳아도 마음으로 낳을 수는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특별한 마음을 쓴 것은 아니지만.

육안으로도 정확하게 입이 식별되는 다슬기들은 뽀뽀를 참 좋아한다. 빨판으로 자신의 몸을 고정하고 입으로 이끼, 야채 등 잡식으로 먹는다. 다른 다슬기 등에 뽀뽀도 한다. 그때 입이 오물오물 참 귀엽다. 그렇다고 내 입에 뽀뽀하기는 싫지만. 굳이 뽀뽀해도 힘이 날 거 같지 않기도 하고.

휴가 끝. 페트병에 다슬기를 넣고, 출근길 전철에 올랐다. 2시간 반의 여정, 출발이다. 도착했다. 단 한 마리도 사착하지 않은 기적의 페트병을 꺼내어 담아둔 계곡물로 몇 번 씻기니 진흙은 사라지고 원래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마리 수를 셈해보니 19마리, 너무 많았다. 자식이라 할지라도 너무 많은 개체를 사무실에서 축양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떠올렸다. 어제 술만 마셨던 것을. 우연히도 사무실에는 라면포트가 있었고, 봉지라면이 있었다. 거기에 나의 간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렇다. 개체수 조절, 천렵의 마무리는 역시 매운탕! 라면을 끓였다. 대충 해감이 된 다슬기 10마리가 투입되었다.

다슬기의 대부분은 난태생으로 체내에서 알을 품다가 새끼로 출산한다. 그래서 해감을 아무리 잘해도 섭취 시 모래 씹히는 질감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그게 모래도 있긴 하나 많은 부분 알이 씹힌다) 패류보다 더 많은 해감 시간을 요구한다. 선별된 10마리는 열심히 수돗물로 샤워한 후 알을 품은 채 라면의 육수를 내는데 쓰였다.

남은 9마리는 진짜 자식이 되었다. 참 웃기게도 물고기 개체가 줄어가는 상황이 도래하기 전 더 많은 구피 치어를 받을 것을 예상했던 우리는 어항을 하나 더 세팅해두었다. 이제 조금 물 잡는 방법을 깨우쳤기에 생명이 살기에 좋은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라 확신이 들었으나, 기존 어항에서는 점점 더 많은 구피와 물고기들이 곁을 떠나고 있었다. 꽤나 망연자실했던 상황이다. 새로운 생명의 등장은 미미했고 용궁으로 우리 곁을 떠나는 이들은 불어나 아득해져 갔다. 그런 와중에 새로운 어항을 꾸미고 물을 잡고 있었다. 어항에서 생물이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달이 필요했고, 아이들의 용궁행은 그 한 달 사이에 벌어졌다.



중용의 길



어항이 생태계로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박테리아에 의한 여과 기능이 충분하게 형성되어야 한다. 그 기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기존에 물이 잡힌 어항물을 새로운 어항에 투입

기존 어항에 새로운 여과기를 넣고 박테리아가 여과기 및 여과재에 서식할 수 있도록 한 후 새로운 어항에 여과기를 투입하기

새롭게 세팅된 물에 박테리아제를 투입

기존 어항에서 쓰던 바닥재를 새로운 어항에 넣기 - 바닥재에 박테리아가 서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에 세팅한 어항은 새 여과기를 먼저 기존 어항에 담가 두는 형식과 박테리아제를 따로 풀어 그 물잡이 기간을 줄이려고 했으나 원치 않은 손님이 먼저 찾아왔다.


'백탁'.


백탁이 찾아왔다. 박테리아가 따로 어디에 붙어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전 물의 경도가 올라가면서 박테리와 함께 다양한 성분들이 과해지면 백탁이 온다. 맑은 물이 희뿌연 물로 변모한다. 시야는 당연히 가려져서 물 안 상태를 살펴볼 수 없게 되나 물이 꼭 생물 생장에 나쁜 물이라고 볼 수 없다. 사실 어항 세팅 초기에는 백탁의 경험은 물생활하는 이라면 꼭 한 번씩 경험한다. 수돗물을 생물이 살 수 있는 물로 만들기 위해 많은 혹은 대부분의 어항이 거치는 과도기인 셈이다. 그런데 이번 어항은 이상하리 만큼 백탁이 길었다. 백탁이 찾아온 지 이미 1주일이 되었고 아직 아무런 생물도 투입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물은 투명해지지 않았다.

그때 든 생각이 다슬기였다. 어차피 기존 어항에 투입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영양이 과해진 상황을 잠재울 수 있는 존재로 급부상했다. 생태 조성이 확실하지 않은 곳에 생물이 들어가는 일은 위험하지만 반대로 안정화를 시킬 수 일이기도 했다. 도박이었다.

다슬기를 어항 내 이끼 등을 먹을 것이고, 똥을 쌀 것이다. 똥은 분해가 되면서 박테리아의 활동을 촉진시킬 것이고 그렇다면 백탁은 사라진다. 하지만 물이 잡히지 않았다면 생명이 위험하다.

신기하게도 이번만큼은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잡이 기간은 충분했고, 처음 어항에 물잡이를 했을 때보다 더 많은 지식을 바탕으로 물잡이를 했다. 거기에 다슬기에 대한 공부도 해뒀었다(진짜 우연히 유튜브 보다가 ㅎ). 가평의 계곡물과 새로운 어항의 물을 맞댄 후 다슬기를 어항에 집어넣었다. 망설임은 없었다.


너무 많은 것은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그렇다고 너무 없는 것은 숨구멍을 막는다.

중도, 어디에든 치우지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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