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정상은 어디일까.
무계획은 참 힘들다. 예전에는 언제라도 어디라도 맘 내키면 그대로 움직였는데.
이제는 계획 없이 무엇을 한다는 것은 그것대로 스트레스더라.
그래서 모든 상황이 내 머릿속 계획 안에서 움직이길 기대한다.
다들 그랬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결국 MBTI의 J(판단)형, 즉 계획적인 사람이 된다고.
오늘도 내 머리에는 하나의 계획과 목표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명절 당일 새벽에는 관악산을 올랐다. 으레 산을 오르며 명절 사이 반년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당연했다. 언젠가 서울대학교 공학관 옆 길로 오르는 바위길을 발견했었는데 그 길이 워낙 위험해 사람들이 찾지 않아서 2시간 정도를 몸을 혹사시키면서 오롯이 나만을 생각할 수 있는 길이었다. 올라가는 길, 아침의 태양이 떠오르면 구정일 때는 새해를 추석일 때는 새로운 희망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일이 많아지고, 역할이 많아지면서 더 이상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관악산을 찾지 않았다.
오늘,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돌을 줍는 것'
돌을 줍고 싶었다. 최근 어항에 관심이 많아지며 자연스레 자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산책을 나가면 꼭 물가를 찾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 풍경 자체가 사랑스러워졌다. 담고 싶었다. 작은 숲 속을 어항에 표현하고 싶었다. 역시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해서 이미 누군가 하고 있었다. 팔루다리움(paludarium)이란 이름으로. 어항 내에 육지와 수상 모두를 표현하는 것, 팔루다리움에 대해 많은 정보를 모았다. 당연하듯 돌이 주재료였다. 여태까지 어항을 꾸미며 실컷 돌에 대해 공부했으니 예쁜 돌을 구매하면 되었다. 문득 작은 고민에 빠졌다.
자연이 사랑스러워서 시작한 일인데
최대한 자연스럽게 표현해보는 건 어떨까?
자연스럽다. 그 말 자체로 인위성을 최대한 배제해야 했다. 그래서 줍기로 했다. 인위적으로 깎고 가공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 발에 밟히고, 바람과 물에 깎인 자연 그대로의 돌을 최대한 구상한 그림에 맞춰 줍고, 씻고, 소독하고, 새로운 환경으로 재탄생하게 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산으로 가자.
오랜만에 주말까지 껴 길어진 연휴 덕에 앞 며칠은 해야 할 일이 많았으나 마지막 날인 오늘은 혼자만의 시간이 보장되었다. 오후 늦게 일어나 산으로 갈 채비를 하였다. 몸통보다 큰 봉지부터 모든 담아낼 수 있게끔 생긴 배낭, 부재료가 될 이끼를 캘 삽, 1회용 지퍼백, 장갑 등 완벽하다고 스스로 판단되었고, 이윽고 산으로 출발했다. 목적지인 산은 돌 줍고 있는 게 창피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 혼날 수도 있는 까닭에 사람들이 잘 찾지 않은 곳으로 선택했다.
산 초입에 목표했던 돌이나 이끼가 많지 않았다. 아마 진입 초기라 등산객이 많은 탓이라 생각한다. 수학의 정석의 1장만 열심히 풀고, 필기하는 것과 같은 이치겠다. 열심히 오르다 보니 원하는 돌이 많았다. 하나 둘, 가방 속 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큰 돌부터 중간 돌 작은 돌 심지어 모래까지 다 담아야 했다. 쌓는 것은 큰 것부터 넣고 작은 것을 넣어야지 촘촘하게 쌓을 수 있기에. 큰 것들로만 지탱할 수 없기에. 이끼도 열심히 삽으로 펐다. 모래까지 담다가 콩벌레가 인사하더라. 징그러웠다. 벌레는 무섭다. 그러나 콩벌레를 잡아서 밖으로 던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집으로 다 옮기고 정리한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찾고 싶지 않다.
욕심은 가방의 무게만큼 한 없이 늘어나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욕심의 대가는 참담했다. 가방은 계속 무거워지고, 그 무게는 내 어깨가 다 받아들여야 했다. 계속 줍고, 푸고, 넣고를 반복했다. 족히 10kg는 넘게 나가는 무게가 되었다. 그런데도 욕심 끝을 내지 않고 계속 속삭였다.
가자, 올라가자. 더 주워서 넣자.
이왕 산까지 왔다. 더욱이 명절이라니. 산으로 오르기 딱 좋은 시기 아닌가. 원래 그렇게 했으니. 그리고 오르다 보면 더 멋진 돌과 이끼가 나를 반기지 않을까. 계속 꾸준히 올랐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산의 특징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몸 하나 이끌기도 힘들게 한다는 것인데, 10kg가 넘어가는 짐을 이고 오르니 체력을 급속도로 빠르게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슬프게도 나는 오르기만 할 수 없었다. 걷다가 본래의 목표대로 앉아서 주워야 했다. 새로운 것이 보이면 보이는 대로. 반복적으로.
물 한 통 안 챙기고 오르다 보니 먹는 건 애밖에 없었다. 몇 번이고 애를 먹고 정상에 다다랐다. 놀랍게도 산의 두 번째 특징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산을 오르는 길은 여러 곳이라 어디서 오르던 한 곳에서 만난다는 사실. 그렇다. 내가 오른 길만 사람이 없던 길이었지 나머지 길들에서는 주말을 맞이하여 사람들이 실컷 산행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상은 매우 잘 닦인 길로 돌 하나 발견하기 힘들었다. 경치를 보고 싶어서 오른 것이 아니었으므로 잠시 앉았다가 하산을 결정하였다. 돌도 이끼도 없는 곳은 의미가 없으니.
하산을 하면서 앉았다가 일어났다가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데, 갑자기 유례없는 빈혈기가 찾아왔다. 부른 적도 없는데. 심할 정도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내 정신을 부여잡고 몸을 들어 잠시 먼 곳을 보았다. 조금 잠잠해졌을 때쯤 다시 하산을 시작했고, 다행스럽게 쓰러지는 일 없이 지상에 도착했다. 과연 내가 가려는 곳이 돌이 많은 곳이었을까, 산 정상이었을까.
산에 오르니 욕심이 생겼다. 오를 곳이 있으니 오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라지만 목적이 불분명하다면 그건 욕심이다. 분명한 것은 오늘 나의 정상이자 목표는 돌과 이끼를 채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눈 앞에 다른 정상이 들어왔을 때 눈을 가리지 못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두 정상을 향해 다리를 뻗었다. 왼쪽 다리는 한쪽 정상으로 오른쪽 다리는 다른 쪽 정상으로 각자 다른 목표를 향해 뻗어나갔다. 삐걱대는 것은 당연한 일. 삐걱거림은 균형을 잃게 만든다. 삐걱거리는 삶도 마찬가지로 언젠간 넘어진다.
둘 다 모두를 취할 수는 없으므로.
정상은 분명 한 곳이다.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