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산책 중 마음의 별이 보였어 #04

광화문 모 빌딩 8층 says.

by 사단화

과육은 땅에 떨어져 뒹굴거리며 벼는 고개를 숙여 그 무르익음을 알리는 수확의 계절, 가을이 왔다. 비단 농부의 수확만이 가을을 알리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어떠한 수고로움도 보상받는 계절일 수도 있다. 풍요로우니까 말은 살찌니까 하늘은 청량하니 높으니까 가을이다.



빠른 송금은 언제나 옳다.



얼마 전 어느 한 공모전 시민평가단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용돈을 준다길래 망설임 없이 참여하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공모전 평가가 토요일인 터라 약간은 후회하고 있었다. 황금 같은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일할 위기가 찾아왔으니. 그래도 주최 측에서 빠른 입금을 약속하였기에 역시 일은 주말에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쉬면 무엇하겠는가. 게을러지기 뿐. 천고마비의 계절, 쉬다가 진짜 살찐다. 신나게 노동요를 부르자.


하루 알바를 뛰는 곳은 서울 광화문. 주말 낮시간이면 -태극기 할아버지 덕에- 가장 핫해지는 곳이다. 바로 그곳, 토요일 한낮에 시간 그 핫함을 더하기 위해 우리 시민평가단은 모였다.


상대적 희열감



막상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더 큰 규모였다. 시민평가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만 족히 백 명은 넘어 보였다. 평가를 받는 팀은 총 13개 팀으로 대부분이 대학생으로 구성되었다. 그 13개 팀 모두에게 상이 돌아가는 형태였으나 본상 7개 팀 입상 6개 팀으로 상격이 달랐다. 그 날은 시민평가단의 평가와 기존 심사점수를 합산해 본상 7개 팀과 입상 6개 팀이 발표되는 운명의 날이었다.

약 2시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각종 심사와 의견 나눔, 공연까지 준비된 신기한 공모전이 거의 끝을 향해 달렸다. 이제 마지막 본상 7개 팀과 입상 6개 팀이 발표가 되는 순간만 남겨두었다. 먼저 발표된 입상 대상 7개 팀, 아쉬움의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마치 우리팀은 본상을 될 줄 알았는데 하는 것처럼. 이 발표가 재밌던 점은 입상 대상은 6개 팀이었는데 7개의 입상 대상 팀을 먼저 선정한 후 평가자들이 재투표하여 7개 팀 중 1개 팀은 본상으로 올릴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그래도 아직 1팀은 본상으로 올라갈 여지가 있다. 끝이 아니다. 안타까움 섞인 그들의 목소리에는 아직 희망이 있었다.

참 그 눈빛이 보기 좋았다. 내가 공모전에 참여한 것도 아니었고, 나랑 전혀 면식이 있던 사이도 아니었음에도. 그들의 눈빛은 분명 빛나 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투표가 끝나고 입상에서 본상으로 상격의 얼굴을 바꿀 팀이 발표가 났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리는 환호성. 한 팀만이 웃고 있었는데 진심으로 신나 보였다. 광화문 어느 한 건물 8층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소리는 주변의 차와 사람들에게 묻혔겠지만 8층에서도 그곳은 빛났다.

입상과 본상 중 꼴등의 상금은 같았다. 입상 7개 팀 중 1등을 해서 본상으로 상격은 바뀌어도, 본상 중 꼴등이기에 상금이 많지 않다. 상금은 몇십만 원 선, 5명 정도가 한 팀을 이뤘고 상금을 나눠가지면 인당 10만 원도 채 받지 못하는 금액이다. 1차 발표, 워크숍, 2차 발표, 최종 PT 준비 등 반년 정도에 걸쳐 진행한 공모전 치고는 상의 규모가 크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리를 박차고 즐거움을 표현했고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서로 나눴다. 짧은 외침의 향기는 8층 전역을 맴돌아 모두에게 추수할 때임을 일렀다.


기억되는 것


이윽고 차례차례 아래부터 순위가 발표되고 축하가 이어졌다. 최종 1, 2등 발표만 남겨놓은 상황, 사회자는 즉흥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각 팀의 팀장들에게 누가 최종적으로 1등을 할 것 같냐고 물었다.


저희 팀이 이 공모전과 관련된 학과 학생들이라 1등을 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올라올 것으로 생각 전혀 못했는데 이왕 왔으니 저희가 1등을 해야 합니다.


인터뷰가 끝난 순간 뒤를 돌아보았다. 청중들은 1등 발표에 앞서서 긴장되는 눈빛이었다. 평가단이 모인 사람의 대부분인 상황,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결과를 두고 같이 긴장하고 있으니 다소 웃음이 났다. 그리고 1등을 발표함과 동시에 1, 2등이 갈렸다. 잠깐 동안의 정적, 주마등처럼 멍한 상태가 지나가고 이내 1등을 한 팀의 팀원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내뿜었다. 기쁨이 매우 컸던 탓일까, 빅이어를 들어 올린 사람들 중 한 명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시울은 금세 빨개지고, 눈물이 한 두 방울씩 콧잔등과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인터뷰를 하려던 사회자는 잠깐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으나 그래도 전문 진행자답게 좋은 그림을 포착하고 울고 있는 사람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상투적인 멘트, 그러나 무엇보다 진정성 있는.


지난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 팀이 함께라서 이룰 수 있던 것 같습니다.

1등의 상금은 그리 크지 않았다. 부상은 없었고, 상장만 있었다. 본상 1등도 입상에서의 1등도 그들은 기뻐했다. 내 생각에는 얻는 것도 별로 없는데도. 눈시울을 붉힐 정도로.




살면서 참 계산적이 된다. 내 시간을 투자하기로 결정할 때는 성과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노력을 쏟았으면 응당 어느 정도 이상의 산출이 있어야 한다. 몇 달을 고민하고, 계획하고, 쓰고, 만들고, 발표하기 위해서는 최소 일정 이상의 환급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공모전은 그렇지 않았다. 반년 동안 수 십 개 팀을 밟고 올라가 정상에 오른다 하더라도 한 명에게 돌아가는 건 고작 몇십만 원 정도. 상위 5개 팀만 벗어나도 1인당 받는 금액은 몇만 원 정도다. 이곳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는 것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눈물을 보는 순간, 잊고 지냈던 과거가 생각났다. 작은 돈으로 이것저것 해보려고 했던 옛 기억이. 10만 원에 진심으로 감사했던 얼마 전에 나의 모습이. 무엇보다 돈이 아니라 가치가 중요하다고 느꼈던 때가. 누구나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삶을 사는데 어른이 되면서, 세상 때와 먼지를 그대로 들이켜면서, 사회의 일부로 녹아들면서 모든 가치는 돈으로 탈바꿈한다.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거추장이 아닌 순수함으로 장식했던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막막하다. 나 스스로 나를 잊고, 다른 나로 사는 것 같기에.

노력을 보상받기 위해서는 내 손 위에 돈이 올라와야 하는가.



이 공모전은 충분히 나에게 얘기했다. 잊지 말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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