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0월
4일차 마지막 날도 날씨는 맑음. 중간중간 흐린 하늘을 보긴 했지만, 이번 여행 내내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었다. 오늘은 오후 5시 비행기라 멀리 가지 않고 체크아웃 후 리츠린 공원만 둘러보기로 했다. 아/점, 점/저 이렇게 남은 두 끼는 모두 우동이다.
체크아웃 후 캐리어를 맡겨두고 근처의 치쿠세이 우동으로 갔다. 평일인데다 오픈 시간 직후라 사람은 많았지만 대기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여행 내내 우동을 먹으면서도 가장 기본 메뉴인 가케 우동은 마지막 날 처음으로 먹었다. 이곳은 우동 종류가 이것 하나라 면의 양만 정할 수 있는데, 차가운 우동을 먹으려면 육수를 붓기만 하면 되지만 따뜻하게 먹으려면 직접 면을 데쳐야 하는 곳이다.
라멘을 먹으면 꼭 시켜 먹는 온센 타마고는 너무나 맛있지만, 계란 튀김은 몇 번 먹다 보니 굳이 시켜 먹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마지막 날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치쿠와는 며칠 전 츠루마루에서 카레 우동 토핑으로 먹었던 것이 단연코 최고라는 걸,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그래도 차갑게 식었거나 특별히 맛있지 않더라도 시켜 먹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우리에게 다카마쓰는 우동, 그리고 치쿠와의 세트로 남을 것이다.
선선한 가을,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낮잠 자는 고양이.
최근 위염 증세로 위가 많이 아팠던 터라 일부러 커피를 피했던 것도 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카페와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특별히 찾아본 카페도 없었던 데다 첫날 가려고 했던 바 겸 카페는 저녁을 먹고 나니 배가 너무 불러서 가지 않았고, 나오시마행 페리를 기다리면서 트럭에서 먹었던 커피는 정말 별로였다.
하지만 리츠린 공원으로 걸어가는 길 골목에서 찾은 코르시카 커피의 라떼는 정말 맛있게 마셨다. 일본에서 커피가 맛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날만큼은 정말 맛있게 마셨다. 내부 분위기도 의도적으로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묻어나 마음에 들었다.
내가 한 컷 한 컷 신중하게 찍으라고 신신당부한 탓에 아직도 현상하지 못한 필름. 비록 우리가 카메라알못, 기계치이지만 미놀타는 한번 사볼까?
리츠린 공원은 입장료가 있는 정원이다. 도쿄의 네즈 미술관 앞 정원을 확대해놓은, 혹은 고쿄를 축소해놓은 듯한 느낌의 깔끔한 정원. 역시나 돈을 주고 들어오는 곳이라 일반 공원과는 달리 사람이 적어서 여유로웠다.
도마뱀이 있을 정도로 이국적인 날씨는 아니었는데.
한 컷 한 컷 신중하게 찍기, 포기.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공원, 정원에 머물렀을 리츠린 공원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곳이 바로 이 키쿠게츠테이다.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모르고 둘러보다가 멀리서 멋있어 보이는 예쁜 건물이 있어서 와보았는데, 차를 주문하면 화과자와 함께 준비를 해준다. 나오시마 히가시 스기모토 미술관도 물론 좋았지만, 여기서 차를 마신 것이 몇 배는 더 좋았다. 다른 관광객 두세 팀과 함께 널찍이 둘러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차를 마시는 것도 여유로운 경험이었고, 뒤편 일본식 ‘젠’ 정원과 호수를 바라보는 전망도 예술이었다.
키쿠게츠테이에서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는 것, 혹은 호수의 잉어와 자라에게 먹이를 주는 것, 그리고 이렇게 모자를 쓰고 배를 타는 것이 리츠린 공원의 주요 콘텐츠였다.
아/점으로 먹으러 갔던 치쿠세이 우동 근처의 사카에다 우동에서 우리의 여행 마지막 끼니를 해결했다. 리뷰를 훑어보니 사람들이 보통 치쿠세이, 사카에다를 고민하다가 어느 한곳으로 가는 것 같은데, 어디가 낫다 평하기 힘들 정도로 두 가게 모두 맛있는 우동을 내주었다. 히야 가케 우동과 자루 우동 모두 쫄깃한 면발로 누구나 아는 평범한 우동 맛을 특별하게 해주었다. 원래 나는 ‘우동은 잘 모르겠고… 라멘이 좋아’파였는데, 이제는 우동의 매력을 알게된 것 같다.
유럽 국가들이 인접해서 쉽게 오가는 걸 보고 부러워했었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을 여행하는 것이 쉬워서 다행이라고, 요즘 부쩍 자주 생각한다. 다들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만 여행 목적지로써의 일본은 세계의 그 어느 곳에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곳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행복한 일이다. 다카마쓰라는 이 작은 소도시도 도쿄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알찬 콘텐츠가 있고, 또다른 어딘가는 지금은 모르는 또다른 매력이 있을 것이다. 함께 떠날 수 있다면 어디든 어떠랴. 비행기를 타면서도 우리는 또다시 이곳을 찾기로 약속했다. 우동과, 밀밭과, 이사무 노구치 가든 뮤지엄과, 지추 미술관. 우리가 아직 못다한 경험들을 남겨두고.
쇼핑 후기. 이번 여행에서는 쇼핑을 하고 싶다해도 할 곳이 없었다. 단지 시내의 리쿼샵에서 야마자키 12년을 팔고 있어서 사야 하나 이틀간 고민을 하긴 했지만 면세점이 아니어서 가격이 싸지도 않고, 이미 공항에서 다른 위스키 두 병을 사 온 터라 마음 편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비노바리끄는 말 해봐야 입만 아픈 감동적인 맛이고, 오래전 마셔치운 시그넷을 다시 사야하나 고민하게 만든 맛이다. 한번 맛보고 싶어서 사본 로얄 살루트 21년은 오픈해서 마셨을 때 생각보다 너무 별로라서 순간 후회했다. 그리고 2주 후 에어링 된 것을 다시 마셔보고는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보통 우리는 700ml 정도의 용량이면 일부 공기로 날아가는 것을 감안해도 1년 이상은 마시는 터라 당분간은 이것들로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다음 여행에서 기회가 있다면 안 살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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