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잠들기 전에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 습관이 하나 있다. 상상 속에서 펼쳐지는 무한의 공간은 삶을 풍요롭게도 해주며 감정을 통제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오랫동안 타지에서 떠돌아다녀서인지 개인적인 취향이 가장 잘 반영이 된 공간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글을 적는 모습을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작가로서 이름이 떨쳐 강연을 나가거나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되어서 사회에 영향력을 펼치는 그런 사람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모습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이런 생각들은 아직 펼쳐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모습이라 허황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상상하는 것만으로 스스로가 꿈꾸는 모습에 부합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곤 했었다. 구체적으로 이루어낸 업적들을 나열하자면 직장에서의 중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직장에서의 성공적인 삶을 그려나가는 상상이 현실이 되거나 취미생활로 시작한 글 적기가 작가가 되겠다는 상상을 통해 현실에서는 책을 출판하는 등 그렇게 지금까지 수많은 상상들이 현실에서 이루어 내었다.
학창 시절에 꿈에 대해서 적는 시간이 있었다. 꿈을 적는 칸에 대부분 과학자, 대통령, 검사, 경찰 등 현실적인 것에 대해서 적었는데 나는 고고학자라던가 철학자 등 특이한 것을 적어내는 것을 보면 참 유별났던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대학교 진로를 정하는 당시에 나는 철학과를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던 적이 있었다. 그때 부모님께서는 '철학과를 나와서 무슨 직업을 얻겠냐고, 그걸로 밥을 빌어 먹고살 수 있겠냐'는 지극히 현실적인 말씀과 거침없는 반대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당시에 부모님의 말씀이 무슨 말인지는 알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속상한 마음은 한구석에 있었다. 실제로 살아보니 현실에서의 직업이란 아주 중요한 요소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라는 존재는 무결점에 가까운 존재라는 깨달으면서 당시 부모님의 조언은 현명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철학에 관련된 글이나 삶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갖춘 글들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직업을 갖는 데는 힘이 없을지는 몰라도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통찰력을 길러줌으로써 힘든 시기를 직면하였을 때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을 만들어 주었다.
만약에 어린 시절에 나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왔을 때, 어린 내가 지금의 나에게 '아직까지 철학을 좋아하세요?'라고 질문해 온다면 '그렇다고' 스스럼없이 말해주고 싶다. 덧붙여서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굳이 그 길을 안 가도 좋으니 계속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많은 이들이 꿈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보통은 꿈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말을 하더라도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다 보니 어른이 되어갈수록 꿈이라는 단어와 멀어지게 되는 것이 대부분인 것 같다. 그럼에도 주변에 희귀하게나마 꿈을 간직하고 그 꿈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종종 보고는 하는데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은 꿈을 이루어낸 사람보다는 여전히 꿈이라는 거친 항해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멋져 보인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온 인생을 걸고 대범하게 꿈을 좇는 것도 멋이 있지만 그것보다는 꿈을 완전히 놓지 않은 채 계속해서 해 나가는 것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생각한다.
인생이란 게 누구나 한 편의 영화 주인공이다. 그 영화는 고유해서 그것만의 맛이 있다고 본다. 다만 지극히 개개인적인 것이라 아직 유명해지지 않았을 뿐. 그런 소소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예술의 한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