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유 없이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잠깐이라도 쉬기라도 하면 도태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무엇이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아 몸을 움직이고는 하는데 이럴 경우에는 비효율적인 결과물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의 페이스를 잃어버린 채 휩쓸리다 보면 최초에 목표했던 방향과는 달리 궤도에서 벗어나는 일이 발생한다. 이럴 때는 과감히 생각을 지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보통 이런 순간이 오게 되면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마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친 마음에 안락함을 제공하는 원동력이 된다. 또한 평소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 낯선 풍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삶에 환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여행은 사실 풍경을 보기보다는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들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자신의 성향과 취향을 발견하기 위한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방 안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만을 취한 지가 어느덧 한 달이 넘어가던 중이었다. 바쁜 일상에서 휴식은 누구에게나 달콤하게 원하는 안식처 같은 것이지만 나에게는 현재 도피해야 하는 공간에 지나치지 않았다. 아무리 올바른 자세라도 오랫동안 유지하면 몸에 무리가 오듯이 지나친 휴식은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행이나 떠나볼까 라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이참에 길게 해외여행을 다녀오자,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또 길게 여행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여기저기 해외여행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여럿 여행지가 후보군에 오를 때쯤 이미 여행을 떠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씁쓸해졌고 여행지에서 고독사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쫙 돌렸다. 물론 연락을 돌리면서도 같이 못 갈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함께 하고픈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누군가 한 명이 나와 같이 여행을 가자고 답장을 하였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직장동료였는데 K라는 친구도 지금 퇴사를 해서 시간이 붕 뜬다고 했고 마침 여행을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대답을 했다. 그렇게 같이 만나 어디로 여행을 갈지 장소를 정하면서 일정을 조율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꽤나 가까웠던 사이이었는데 같이 여행을 함께 떠나도 되는 관계가 맞을까. 서로가 왕래가 끊기지 조금의 시간이 지났는데 그래도 같이 간다면 즐거울까. 여행의 끝에 다 달았을 때 행복할까. 그러다 혼자 여행을 가야 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혼자 여행을 간다는 것도 참 난처하고 그렇다고 같이 가자니 참 난감하다. 결국에는 K에게 사실대로 말하고선 혼자 여행을 가게 되었다. 비록 혼자 떠나게 되었지만 한결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을 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필연적인 거리가 존재한다. 그러한 거리는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어 다른 사람이 그 공간을 침범하는 것에 대해서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러한 공간은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 공간이 지대하게 커져버리면 외롭게 만들어 버리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늘 혼자이고 싶다는 생각에도 막상 혼자이면 외로워지는 것처럼, 정서적 거리감은 고독함과 외로움을 만들면서도 혼자이고 싶게 만드는 모순적인 면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