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나서였을까. 요즘 들어 하늘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게 해 주었다. 올해 여름은 무섭게 찾아온 장마 탓인지 축축했던 일상에 지나지 않았는데 요즘 하늘을 보니 기분전환이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사람마다 느끼는 계절은 다른 것 같다.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 구름이 덩그러니 혼자 부유하는 것처럼 주변과 섞이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마치 자유롭지만 외롭다고 느껴졌다.
오랜만에 I라는 친구를 만났다. 몇 년 전에 결혼한 그 친구는 벌써 아이가 둘이다. 물론 한 번에 두 명을 낳았으므로 첫 출산은 남들보다 두 배 이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무엇이든지 두배로 힘든 육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최근 들어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니면서 조금은 자기 시간을 가지게 되어서 좋다고 한다. 그랬기에 이렇게 잠깐의 시간을 내어 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우리는 이런저런 근황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I는 나에게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소개팅을 많이 해봐"라고 이야기했다. 친구의 말에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생각보다 싶지 않아. 덧붙여서 솔직히 자만추를 하고 싶지만 너도 알다시피 지금까지 혼자 하는 일이 익숙하기도 하고 워낙 집돌이 성향이 강하기에 새로운 사람과 마주치는 그런 이벤트 같은 상황이 일어나지 않아. 그래서 소개팅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이것 또한 나이가 들어서인지 과거에 비해 좀처럼 소개가 들어오지 않아"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I는 자신의 주변에도 나와 비슷하게 자만추를 추구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아직까지 결혼에 골인을 못했다는 말을 하면서 이제는 소개를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주변에게 소개팅을 주선해 달라고 어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개팅을 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히 알겠지만 해야 하는 명분이 아직 안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소개팅을 왜 안 하게 되었는지 이유에 대해서 I에게 말했다. "소개팅이라는 게 잘 알지도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이 번거롭기도 하고 또한 이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까지 많은 에너지를 쓰이다 보니 소개팅을 회피하게 되는 것 같아. 자만추라는 게 내가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오랫동안 관계가 유지됨으로써 자연스레 상대방의 성향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더욱이 자만추를 추구하게 되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I는 이 말에 반박이라도 하듯이 "네 말대로 물론 자만추를 해서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겠지만 솔직히 그럴 확률도 낮기도 하고 정말 결혼에 대해서 생각이 있다면 지금부터 꾸준하게 소개팅을 해야 해."라고 말했다. 그리고서는 I 자신의 성공적인 소개팅 이야기를 알려주었다. I는 주변의 친구에게 소개팅을 주선해 달라고 말하기보다는 직장 내에 직급이 있거나 연륜이 있으신 분에게 적극적으로 주변에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어필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 이유는 보통 친구들에게 있어서는 소개팅이란 게 단순히 스쳐가는 일회성일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연륜이 있는 사람들은 고심을 해서 나에게 맞는 좋은 사람을 소개해줄 확률이 더 높다가 말했다. 그 말은 들은 나는 I에게 "참 너답다."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 결혼할 시기가 가까워져서인지 결혼한 지인들을 만날 때면 어떻게 한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기로 결심했는지 질문하는 버릇이 생겼다. 보통 이런 질문에는 크게 2가지 답변으로 나뉘었는데 '한눈에 딱 이 사람과 결혼하게 될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운명론적 대답과 '어떤 조건이든 이 사람만한 사람을 앞으로 만나기 힘들 것 같아서'라는 현실적인 대답이 있었다. 그러나 I라는 친구는 자신답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나중에 가진 것이 모두 없어지더라도 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혼을 결심했다." 나는 I의 대답에 지금까지 그리던 그런 이상적인 결혼관이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창가에서 결혼을 하게 된다면 I의 답변처럼 그런 사람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누군가가 보았을 때 결혼에 관해서 마음의 자세가 준비된 사람일까'라는 반문을 해보았다. 그렇게 결혼에 관해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연애를 지나 결혼으로 가는 길에는 중요한 관문이 하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관문에서는 연애시절 서로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던 환상을 무참히 깨버리고 현실이라는 문제를 직면하게 함으로써 진정으로 상대방의 대한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었는가를 시험하게 하는 것 같다. 이 시험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모습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서 서로 다른 생활라이프가 하나로 융합되어 가는 과정에서 일으키는 불협화음들을 화음으로 슬기롭게 만드는 것이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신혼여행이라는 것은 결혼 이후에 처음으로 서로가 다름을 받아들이는 시련을 그나마 아름답게 미화시킨 하나의 시험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