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해가 떨어지고 나서는 선선한 날씨가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니 산책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J라는 친구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일본 분위기의 이자카야로 향했다. 조형 벚꽃이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모습이 술집의 분위기를 한껏 더 우아하게 만들어 주었다. J라는 친구는 최근에 이직을 위해 공무원 시험에 도전을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서 다시 한번 이직준비를 하는 게 맞는가에 대해서 고민이 있다고 했다. 준비해서 무조건 된다라는 보장이 있으면 한번 더 도전을 해보겠는데 무조건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다 보니 재도전한다는 것에 대해서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대수롭지 않은 듯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했다. 덧붙여서 '이번에 아쉽게 떨어졌으니깐 이번 시험을 준비하면서 부족한 점을 분석하고 그것을 보완하면 내년에는 합격하지 않겠어?'라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J라는 친구가 대뜸 나에게 "T발 C야?"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는 내심 당황했다. 내가 T라니. 내가 어딜 봐서 T인 것인지 의아스러웠다. 이렇게 에세이와 연애소설을 적는 사람인데 감성적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하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T발 C야?'는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공감을 못해주는 사람에게 붙여지는 수식어인데 친구가 저 말을 내뱉은 것은 현재 상황에 대해서 해결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것이 아닌 마음적 위로를 받고 싶어서였고 그 위로 끝에는 다시 한번 더 준비할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J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기에 나는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람을 치부받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나의 편협한 선입견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J는 쉽게 감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기에 공감을 해주기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나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친한 친구들은 나를 보고 만사가 무관심한 편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이것은 환경적인 요인인지, 태생이 그러한 것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다른 사람의 일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러한 성격 때문인지 요즘 유행하는 TV프로그램이나 연예인 등의 소식에 대해서도 어두운 편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루에 처리해야 하는 정보가 너무나도 많은데 사소한 것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면 뇌가 버티지 못해서일까 나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가 발동하여 자연스럽게 필터기능이 작동함으로써 관심이 없는 분야이거나 대화의 내용이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면 그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주관적인 시선에 따라 일상 속에서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 특별하다고 여기는 순간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하는 편이다. 예로 들면 여행을 갔다가 기대도 하지 않은 장소에서 먹었던 음식, 평소처럼 출퇴근하는 거리에 예기치 않은 날씨가 가져다준 황홀한 풍경은 시간이 지나서도 변함없이 기억 속에서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이런 성향 덕분에 유행에 민감하지 않았고 또한 오랫동안 좋아해 왔던 것을 유지했기에 주변으로부터 '참 너답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옷을 사러 쇼핑을 갔다가 누군가가 이것은 '딱 너 스타일이다'라고 말했을 때, 친구와 같이 길을 걷다고 갑자기 내가 멈추었던 순간 들려오는 '딱 너 감성이다' 등 이러한 것들이 나란 사람이 가진 취향에 대해서 잘 나타내주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에 취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가 의문스러웠다. 요즘은 남의 취향에 맞춰 살아간다고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다.
SNS가 발달된 만큼 서로의 일상이 과도하게 노출이 되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면 요즘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유행처럼 만들어낸 하나의 짧은 영상들이 우리들의 일상 속에 파고들어 그것들을 대중들이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우리는 획일화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의 취향보다는 남의 취향을 사로잡히는 것 같다. 자신의 취향이 아직 없었기에 남의 취향을 빌리는 것일까? 마치 MBTI처럼 사람이 어떻게 하나의 성향으로 정의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각자 타고난 기질과 살아온 환경, 그리고 경험이 다른데 말이다. 본인의 취향에 대해서 모르기에 때문에 어쩌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를 내려주는 MBTI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만의 취향을 찾아 나설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