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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리 Oct 15. 2024

삶의 궤적은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이 뜻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있다. 예고 없이 쏟아지는 빗방울처럼. 비를 맞기 전에는 우산을 찾거나 빗속으로 뛰어들지 말지를 수없이 고민한다. 그러나 막상 비를 맞으면 언제 그랬나듯이 걱정은 어느새 과거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게 된다. 24년 9월 여름의 끝자락에서, 그렇게 나는 상실감을 온몸으로 받아 드렸다. 그날은 유난히도 운수가 좋았던 날이었던 것 같은데 끝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다. 


사건의 계기는 이사를 하기 전날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제 서울에서의 생활이 마무리하는 의미로 친구들과 서울의 야경을 보기로 했었다. 내가 친구들에게 서울의 야경을 보자고 제안했던 이유는 서울의 밤을 떠나기 전에 두 눈으로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막상 친구들과 만났을 때 나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야경을 보기 위해 등산하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야경을 보기보다는 가볍게 배드민턴을 치고 저녁밥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한참을 배드민턴을 치던 중 친구 한 녀석이 제자리 멀리 뛰기로 저녁밥 내기를 제안했다. 나는 자신이 있던 터라 흔쾌히 수락했고 그 결과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아찔했다. 당시 나는 제대로 된 신발이 아니었고 바닥이 미끄러운 소재로 되어 있었기에 제자리멀리뛰기를 한 직후 착지와 동시에 무릎에서 '우두득'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체감상 5분의 시간을 누워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온몸에는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으며 정신이 돌아왔을 때에는 '아 이것은 수술해야 한다.'라는 직감과 과거에 다쳤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오르며 현재 상황과 오마주가 되었다. 


호흡이 돌아왔을 때 친구들이 걱정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의 모습에 괜스레 아픈 척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스쳤고 최대한 의연스럽고 또 익살스럽게 웃으며 가볍게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 자리를 얼른 떠야겠다는 생각 했다. 더 머무르다가는 내 감정이 들통날 것 같다고 심각한 상황을 혼자 마주하고 싶었기에 급하게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현재 마주한 상황이 꿈이기를 기도했다. 그리고는 후회와 한탄이 섞인 말로  만약에,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만약'이라는 단어와 무한한 싸움을 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오만과 객기를 부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결과가 조금 나아졌을까. 과거에 바꾸지 못한 일들도 함께 스쳐 지나갔다.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제일 걱정되는 것은 역시나 '돈'이라는 존재였다. 내 삶에 이렇게나 중요한 자리로 꿰차고 있다는 것에 새삼스레 놀랬다. 누군가는 돈보다 몸이 더 중요하다고는 이야기하지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앞으로 다달이 나가는 월세와 공과금, 생활비 등 지금까지 열심히 모았던 돈이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참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미치게 만드는 것은 수술을 함으로써 소방관으로서 임무수행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에 극심한 스트레스와 통증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병원에서 MRI 촬영한 결과 예상대로 십자인대 파열과 연골이 찢어졌다는 소견을 받았다. 심지어 과거 7년 전에 다친 곳을 똑같이 다쳤다. 다시 수술을 해야 된다는 의사에 말해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진료를 보기 전에 이미 예상은 하고 있던 결과였음에도 혹시나 하는 희망과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수술을 해야하 한다는 의사의 말에 과거에 겪었던 힘든 시기를 겪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싶지가 않았다. 과거에 수술했을 1년간 제대로 걷지도 못했었고 앞으로 좋아하는 운동을 다시 있을까라는 불확실함과 매일 싸웠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것이 우울증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수술날짜를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 안에서 조용히 울었다.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한동안 떨어지는 눈물을 붙잡지 않았다. 그렇게 눈물을 보내주고 나서야 현실을 직면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래 어차피 한번 가봤던 길이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과거에 해냈다는 사실은 변함없기에 이번에도 잘 해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삶의 궤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단순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부터 하자.  


스러지던 꿈, 좌절한 시간들이 모여 그것들이 밤하늘의 별이 되고 예기치 않는 순간에 하나의 선을 그을 때,

유성우에 소원을 빌듯 그 속에서 우리는 아주 희미하지만 '희망'을 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912_guk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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