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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리 Oct 10. 2024

다들 잘 지내신가요.

수도권에서 거주한 지 열 번의 계절을 맞이하였을 때 이곳에서 생활을 정리하고 이제는 지방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결심하게 된 이유는 앞으로 일 할 직장이 지방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사 날짜를 정했을 때 K라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빠, 내려가기 전에 한번 얼굴 봐야지?" 반가운 목소리에 "당연하지"라고 대답을 했다. 이렇게 떠나가는 사람을 찾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참으로 K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K라는 친구는 소방공무원을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어른스럽고 현명한 친구이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친구이다. K를 통해서 소방공무원을 함께 준비했던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가벼운 술자리를 가졌다. 현재 이 친구들은 소방학교에서 교육을 받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만나러 와준 것에 대해서 고마웠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고 표현하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감정을 내비치는 게 서투른 나라서인지 그러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나의 마음이 그 친구들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친구들과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내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조금 더 함께하고 싶었지만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의 막차 시간이 도래했기에 어쩔 수 없이 오늘이 마지막이 아닌 것처럼 서로의 발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에 들러 맥주 4캔을 샀다. 현관문을 열어 방 안으로 들어가니 반기는 것은 어두컴컴한 집안이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샤워를 마친 뒤 잔잔하게 음악을 틀고 맥주를 마시다 보니 문득 슬퍼지기 시작했다. 피자라는 완벽한 한판에서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갔을 때 가져다주는 어색함처럼 지금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서툴렀다. 이유 따위는 없었다. 모처럼 기분 좋게 술을 마셨는데 왜일까. 왁작지껄한 분위기 적막함으로 변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평소처럼 혼자 보내던 시간에 누군가와 함께 공유한 것이 삶의 한 부분에 영향을 끼쳐서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몸에는 항상성이 존재한다. 항상성이란 다양한 자극에 변화하지 않고 기존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적당한 취기가 이 항상성이라는 존재를 부각했다. 지금까지 혼자 있었던 삶에서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이 반응하여 슬픔이라는 결과를 가져다주었지만 오히려 술에 취했다면 지금의 이 울적한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 테니깐. 살다 보면 이러한 이유 없는 슬픔이 찾아오곤 한다. 되게 가을이 진입했을 때 주로 느끼는데 이를 '고독'이라고 사람들이 지칭한다. 가을이 절정에 이루었을 때는 적당히 서늘한 밤공기에 가벼운 외투가 가져다준 따스함이 마치 누군가의 온기를 애틋이 찾듯 지독하고도 쓸쓸한 고독함에 빠지는 것 같다. 가끔은 이런 고독함을 즐기는 편이데 이런 고독함은 자주 찾아오는 것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이런 고독함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고 보면 이런 감정을 느낄 때면 이으코 찾아오는 것은 과거에 대한 회상이다. 과거의 특별한 시점으로 되돌아가 만약 내가 그때 그 순간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땠을까 라는 반성 아닌 반성을 하듯이.  


그러고 보면 사람과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처음 경험한 곳이 군대였다. 군대시절, 짧게는 1년 보통 2~3년에 한 번은 이사를 했기 때문에 10년간 군복무를 통해 이사만 6번 했다. 처음에는 정든 사람들과 익숙한 도시를 떠난다는 게 여러모로 어려운 일이었다. 항상 느끼는 감정은 미묘 복잡했는데 한마디로 시원섭섭하다가 가장 알맞은 표현인 것 같다. 잦은 이사가 가져다준 장점은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것이 빠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과거에 함께한 인연에 대해서 쉬이 여기지 않는 마음과 함께 했던 추억이 깃든 장소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무덤덤 해질 법도 하지만 이게 참 쉽지는 않은 일인 듯하다. 그래서 더 이상 이런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전역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회자정리'라고는 말하지만 이렇게 떠나보낸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그랬기에 사랑 앞에서는 늘 이별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따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마음을 관통해 버렸기에 지금까지 스쳐갔던 사람들의 현재 모습들이 궁금해졌습니다. '다들 잘 지내신가요?' 이 적막을 깨지 못한 대답이겠지만 무수히 지나쳤던 사람들을 통해 많이 웃었고, 그리고 헤어짐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삶의 중요한 부분을 조금은 채운 듯합니다.


(@912_guk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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