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진 재료의 맛

by 구기리

정우는 회의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서른여덟. 이제 얼굴 한쪽에는 세월이 뚜렷이 패인 나이였다. 그는 자기 자신을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다. 스물다섯 살 때의 충동, 서른 살 때의 조급함, 서른다섯 살 때의 체념. 그 모든 것들이 레이어처럼 쌓여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

너무 잘 아는 것도 문제였다. 마치 자기 자신이 직접 설계한 새장 안에 스스로를 가둬놓은 것 같았다. 이럴 땐 이렇게 반응하고, 저럴 땐 저렇게 행동한다. 공식처럼 정확했다. 무미건조했다.


수진을 처음 만난 것은 석 달 전이었다. 친구의 소개였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지금은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여자. 프랑스어와 영어,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주말이면 필라테스와 골프를 즐기는 여자. 요리도 잘했다. 와인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완벽했다. 너무 완벽했다.


정우는 서류 더미 속에서 손을 멈췄다. 가슴 한쪽에서 불편함이 불쑥 튀어나왔다. 미세먼지처럼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확실히 목을 조르는 그 무엇. 그는 볼펜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첫 만남 때부터 느꼈던 그 애매함. 그녀가 권한 이탈리아산 레드와인은 확실히 좋은 것이었다. 그녀가 준비한 트러플 리조또도 훌륭했다. 대화는 지적이었고, 웃음소리는 우아했다. 그런데 왜. 왜 이 모든 것들이 정우의 입 안에서는 맛이 나지 않는 것일까.


"이 사람과 헤어져야 할 이유를 찾고 있어."

정우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성은 계속해서 속삭였다. 이만한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지금이 고점이라고.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거라고.


그러나 감정은 다른 말을 했다.

스물다섯 살 때 만났던 은주를 떠올렸다. 은주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지방대학을 나왔고, 작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와인은커녕 소주도 잘 못 마셨다. 하지만 은주가 끓여준 라면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은주와 함께 걸었던 한강변은 어떤 유럽의 거리보다 아름다웠다. 그건 단지 젊음 때문이었을까. 익숙함에 대한 향수였을까. 정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맛을 알기 때문에 이 맛이 아니라고 느끼는 것이었다. 하지만 차마 '맛없다'고 평가할 수가 없었다. 고급진 재료가 주는 이름값 때문에.

저녁이 되어 수진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새로 오픈한 오마카세 레스토랑 예약했어요. 8시에 봐요."

정우는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답장을 보내야 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문득 은주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헤어지던 날 밤, 은주는 울면서 말했다.

"오빠는 오빠 자신을 너무 잘 알아서 문제야. 오빠가 만든 틀 안에서만 살려고 해. 그 틀 밖으로 나오는 게 무서운 거잖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정우는 천천히 답장을 입력했다.

"수진씨, 우리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자신을 너무 잘 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 저주를 깨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고점을 놓치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것을.

유리창 밖으로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정우는 오랜만에 자기 감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비록 그것이 수많은 데이터가 만들어낸 합리적 결론과 배치되는 것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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