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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미결성

by Juma


아, 싫은 건 아닌데

불편한 것도 아닌데

만나야 되긴 하는데


만나고 싶지 않다.


어느 순간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생겼다. 관계성에서 오는 풍요로움을 지극히 사랑하고 지향하지만 문득 만남을 미루게 되는 나를 보며 낯설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분명 좋은 사람인데 나는 왜 이 관계가 쉽지 않을까? 이 어긋남은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일까? 실은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는 건 내가 아닐까?라는 물음표 투성이의 질문들. 돌고 돌아 결론은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일 수 있지 않을까? 에 대한 자기 검열로 다가왔다.


싫으면 안 만나면 된다는 일차원적인 답변을 들었을 때,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이해시킬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싫지는 않으니까, 불편하지도 않으니까. 그렇다고 손절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냥 어떤 감정 쏟는다는 것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애매하게'가 모두 붙어있는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 상대방의 감정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 말 끝마다 꼬투리를 잡는 사람, 좋은 이야기를 나눠도 비관적인 사람,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 하지만 이 관계를 잘 유지하려고 애쓰는 참으로 애매한 사람. 서로가 바라보는 친밀함의 기준이 어긋난 채 조용히 관계가 병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관계에 억지로 이름 붙이지 않기로 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채로 두기. 인간관계는 가끔 이렇게 서로의 속도가 다르고 기대도 다르고 필요도 다르다. 모든 사이가 명확해질 필요는 없다. 그저, 이 거리에서 서로 불행하지만 않다면 그 정도면 충분한 관계도 있다고 믿고 싶다.


어렸을 때엔 정말 아무나 만나도 마냥 좋았는데 이제는 마냥 좋은 사람만 만나고 있다. 한정적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사는 것 자체에 치여 너덜너덜해진 나를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을 만나 치유하고 위로받고 다음을 기약하는 것뿐이다. 내가 에너지를 쏟을 이유가 없는, 커피 한잔에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오히려 나를 충족시켜 주는 관계들. 어느새 나의 큰 울타리는 좁아지고, 좁았던 땅은 넓어졌다. 나이 탓을 하고 싶지 않지만, 탓을 하자면 나이가 아닐까? 한정적인 내 시간을 풍요롭게 쓰고 싶은 나이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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