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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ma Jan 22. 2021

지금, 죽고 싶은 너에게

내가 나에게 쓰는 글

죽고 싶다면 죽어도 좋다.


살고 싶지 않았던 그 모든 이유들을 회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할 것이고, 죽음이 너에게 평온을 가져다 줄거라 생각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절실한 하루가 아마 너에겐 의미 없는 하루일 것이고, 누군가에겐 평범한 하루가 지금 너에겐 가시를 씹어 목으로 삼키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하루겠지.


그러나 죽기 전에 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기에 이렇게 글을 쓴다.


너는 네가 좋아하던 모든 것들 또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는 좋아하는 계절을 맞이할 수 없고, 제일 좋아하는 음식도 먹을 수 없으며 세상에 모든 귀여운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을 것이다.


봄은 네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었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았으며 따스함이 가득해 얇은 옷 하나만으로도 날씨를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계절이었다. 커피와 샌드위치를 들고 공원에 가는 것을 즐겼고, 꽃놀이라는 명목 하에 매년 벚꽃 밑 평상에서 파전과 막걸리를 먹고 벚꽃잎이 흩날리듯 낮술에 취하기도 했다. 벚꽃이 피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는 그 계절에 엄마가 해주던 봄나물의 향을 좋아했고, 겨울을 버틴 꽃나무들이 만개하는 그 계절을 너는 참 좋아했다.


여름에는 늘 짧은 휴가를 떠났다. 산으로 가서는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산바람을 맞으며 열을 식혔고, 바다로 가서는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밑에서 해수욕을 즐겼다. 밖은 아지랑이들이 아스팔트를 타고 올라와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마시는 캔맥주를 사랑했다. 특히나 너는 에어컨을 틀고 이불 밑에 들어가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도 했던 것 같다. 긴 장마가 시작되면 비가 올 때만 맡을 수 있는 흙냄새에 매료되기도 했고, 빗소리를 들으며 내리는 비를 창문 너머로 내다보는 것은 네가 여름에만 누릴 수 있는 취미였다.


가을이면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울긋불긋 물든 단풍들을 보는 즐거움을 알게 되는 것 같았다. 여름이 오기 전의 봄과는 다르게 겨울이 오기 전의 가을은 선선하고 시원했다. 마른 나뭇잎을 밟을 때면 들을 수 있는 바스락 소리와 발 끝의 감각을 좋아했고 서점에 가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사 오는 것도 가을에 가장 많이 했다. 가을 전어는 좋아하지 않아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꼭 챙겨 먹었는데 항상 생각보다 고소하고 맛있었던 것 같다. 미묘하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것을 바람의 온도에서 느낄 수 있었고 온도가 변하는 그 바람을 맞는 것이 좋았다.


겨울의 시작은 늘 붕어빵이었다. 옷을 껴입고 총총걸음으로 붕어빵 파는 곳에 들러 종이봉투에 붕어빵을 가득 담아 가족들과 나눠 먹는 것을 좋아했고, 노점에 서서 어묵을 먹고 꼭 종이컵에 국물을 담아왔다. 따뜻한 바닥에 앉아 귤을 까먹으며 군고구마 파는 곳을 수소문해 사 오기도 했다. 눈이 내리는 날엔 어린아이 마냥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눈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강아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캐럴을 흥얼거리고 외출할 땐 항상 핫팩을 주머니에 넣어 다녔던 계절이 겨울이었다.


지금 너의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 견딜 여력조차 없어 이 글을 읽는 내내 눈물이 차 올라 뿌옇게 된 모니터를 바라보며 울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나를 놓아버리는 것은 나쁜 것만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좋았던 것 까지 모두 놓아버리는 것이다. 좋았던 이 모든 것들을 다시는 떠올릴 수 없을 것이며 너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고, 그 사람들의 마음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줄 것이다. 설사 지금 너의 옆에 아무도 없더라도 너는 혼자가 아니다. 너를 사랑하는 내가 존재하기에 텍스트로나마 내 마음을 전한다.

 

사시사철 바뀌는 계절 속에서 네가 가장 좋아했던 것들을 생각하고, 계절과 시간에 상관없이 늘 니 옆에 존재했던 모든 것들을 떠올리며 무엇보다 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버텨라, 살아내야 한다.


무엇이 너를 힘들게 했던지간에 너는 살아야 한다. 살아서 사계절을 보내고 또 보내면서 '그래도 살아있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잘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다가 또 힘들 때 이 글을 보며 버텨라. 나는 진심으로 네가 버텨내줘서 고맙고, 살아줘서 고맙고, 사계절을 수도 없이 지내줘서 고맙다고 너를 꼭 껴안아줄 것이다.


사계절을 사랑했던 너를 사랑한다. 사소한 행복에도  웃었던 너를 , 마음이 따뜻했던 너를, 배려심이 많았던 너를, 그냥 존재 자체만의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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